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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10. 2023

모가 난 아내, 또는 모나미 아내

'모나미 153 블랙 메탈 에디션' 볼펜 구입기


"그렇게 까칠한 여자분이랑 어떻게 살아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오, 술!)한 나와 달리 뭔가 까탈스럽게 보이는 아내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한테는 전혀 까칠하지 않습니다. 하하.


물론 백 퍼센트 그렇지 않다. 윤혜자는 사실 좀 까칠한 편이다. 꺼냈던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못하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한 번 입은 옷을 옷장에 둘둘 말아두었다가 들키는 남편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어떤 황당한 일이 벌어져도 변명과 직무유기에 올인하는 현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나 그걸 보고도 무념무상 제 몸만 챙기려 드는 야당의원들이 등장하는 뉴스를 보며 불을 뿜는다. 한 마디로 조용하고 순종적인 여인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런 그녀가 어제 남편을 위해 '모나미 153 블랙 메탈 에디션' 볼펜을 샀다. 성수연 배우가 기획하고 출연하는 일인극을 보기 위해 성수역에서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먼저 도착한 아내가 스타벅스 옆에 이는 모나미 매장에서 샀던 것이다. 나는 감동했다. 볼펜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플라스틱이던 몸체가 메탈 재질로 되어 있고 리필 심도 파커나 워터맨처럼 고급형이다.  필기감이 좋고 오래간다. 무엇보다 볼펜 끝에 ' mangmangdy'라는 나의 ID가 새겨져 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비싼 거야, 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매장 안에서 내 ID를 새기고 있던 아내의 마음을 잠깐 상상해 보았다. 내가 고마워, 라고 인사를 했더니 '잃어버리지나 말어."라고 까칠하게 으르렁거렸다. 내가 "그럴 리가. 아유, 안 잃어버려."라고 했더니 "흥, 대답은 잘해. 대답만 잘해." 라며 계속 레이저를 쏜다. 역시 모가 난 아내다. 그러나 고마운 선물을 받았으니 어제오늘은 모가 난 아내 대신 모나미 아내라고 부를 생각이다. 모가 나지 않은 모나미 아내. 모가 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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