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용카드 분실 역사
한 달 전쯤 동네에 있는 초월스터디카페에서 일을 하다 연극을 보러 급하게 나간 날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 스터디카페에서 지불을 한 게 마지막이고 다른 사람이 사용한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어디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잊은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므로 결국 분실신고를 하고 새 카드를 발급받은 것이다.
신용카드를 잃어버리면 골치 아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제도 넷플릭스 요금 결제가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날아와서 카드번호를 변경했다. 가장 곤욕은 줌 결제 변경이었다. 나는 요즘 줌으로 강연하는 일이 많아서 도중에 끊어지지 않고 계속 화상 회의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줌에서 계속 결제가 안 되었다고 차갑고 무서운 메시지를 이메일로(그것도 영어로) 보내왔다. 네 신용카드가 작동하지 않으니 끊어지지 않고 서비스를 계속 받고 싶으면 여기를 눌러라, 라고 하길래 거기를 눌렀는데 카드 변경이 안 되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아내에게도 묻고 손님방에 사는 혜민 씨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줌은 요지부동, 새로운 카드를 등록하는 단계에서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고 계속 모래시계만 떴다. 수십 번 해도 안 되자 아예 탈퇴를 하고 다시 가입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으나 미납요금을 남겨둔 채 그랬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그러지도 못했다. 상담 채팅창을 열어도 매뉴얼처럼 나뉜 질문 페이지로 갈 뿐 개인 직원과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찾아보았으나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두려움에 빠진 나는 곧 있을 '리뷰 쓰기로 가볍게 시작하는 글쓰기' 강연에 온 사람들이 줌이 되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번민했다. 해결책은 역시 아내였다. 다시 한 번 결제 카드 변경을 시도한 아내는 내가 결제 정보 중 주소 일부를 잘못 기입한 걸 찾아내 바로잡았던 것이다. 그걸 해결하자 아더왕이 칼 뽑은 것처럼 모든 게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KT에서 스마트폰 요금 자동이체가 거부되었다는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나는 마당에 서서 그 메시지를 읽고 있었는데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묻길래 사정을 얘기했더니 KT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100번으로 전화를 걸어 AI 지니와 대화를 나누고 순조롭게 신용카드를 변경했다. 지니가 "예, 아니오로 대답하세요."라고 하면 "예!"라고 로봇처럼 대답하는 내가 약간 한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능숙하게 카드 번호 변경을 해내는 게 스스로 대견해서 잠깐 웃었다. 카드 변경을 무사히 끝내고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무려 7년 전에 내가 신용카드를 분실했던 얘기가 떴다. 내가 분실신고를 하려고 카드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얼마 전에 분실하신 카드가 지금 집으로 가고 있는데 그새 또 분실하신 것이냐?'며 직원이 놀라는 얘기였다. 한숨이 나왔다. 내 분실의 역사는 길고도 깊구나. 그러니 며칠 전 아내가 사준 모나미 메탈 볼펜을 두고도 사람들이 내가 잃어버릴 것이라는 데 돈을 건다고 난리를 치지. 아아. 뭐든 잃어버리더라도 자아는 잃어버리지 말고 살자, 라는 아전인수격 결론을 내려보는 토요일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