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Sep 07. 2023

결혼과 술과 글쓰기, 그리고 산책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2차원에 산다면, 그래서 육체도 뇌도 갖지 못하고 점⋅선⋅면으로만 존재한다면 3차원에 사는 존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와, 쟤들은 결혼도 하고 술도 마시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네! 결혼도 하고 술도 마시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는 나는 이런 걸 하면서도 다른 차원에 있는 남이 부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의식하면서 살자. 나는 결혼도 했고 술도 마시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한다. 나는 행운아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 당신 역시 행운아다. 더 무엇이 필요한가. 물론 더 필요한 것 많다. 돈이 더 있었으면 좋겠고 남들에게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고 멋진 이성이 내게 야릇한 눈길을 던졌으면 좋겠고 지난달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놈처럼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게 대부분 이루어지면 좋겠고…….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바라는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결국 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행해지기만 한다. 소시민적 욕심은 바닷물과 같아서 아무리 마셔도 목이 마른 법이다.


그러니 원하는 게 있더라도 조금 천천히 원하기로 하자. 원하다가 못 이루고 죽어버리면 뭐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대신 현재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자.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놀고 낮에는 일하다가 해가 지면 술을 마시거나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밤 산책도 가끔 하는 이런 삶이 좋다. 가끔은 오늘처럼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고(쇼핑센터 브랜드 런칭 관련 일을 하나 맡았는데 시안 제시 일정이 깡패 수준이다) 멀리 지방까지 버스나 KTX를 타고 글쓰기 강연이나 북토크를  하러 가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도대체 그런 것도 안 하고 어떻게 사나. 가만히 앉아 숨만 쉬는 삶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다행히 나는 뒤늦게라도 결혼을 했고 술과 글쓰기, 산책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 이제 돈만 좀 더 생기면………아, 이런. 아무래도 청빈으로 살긴 틀린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 잃어버려도 자아는 잃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