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쌓아놓은 한국영화의 저력이 보이는 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 리뷰

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를 봤다. 지진으로 모든 아파트가 붕괴되고 사람들이 깔려 죽거나 굶어 죽고 얼어 죽은 상황에서 운 좋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의 주민들은 <설국열차>의 맨 앞 칸에 탄 사람과 같은 존재가 된다. 바깥 기온이 영하 30도라는 설정 때문에 배우들이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찍느라 고생했다는 후문은 '추방=죽음'이라는 등식을 피부로 느끼게 하기 위한 감독의 고집이었을 테고 그 고집은 주효했다고 본다(아, 엄태화 감독은 배우 엄태구의 형이라고 한다. 몰랐다. 그래서 엄태구가 잠깐 출연했구나)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집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의  메인 무대를 아파트로 잡은 건 뛰어난 통찰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설국열차처럼 계급을 나누다가 급기야 바깥사람들을 바퀴벌레로 타자화하기에 이른다. 생존 앞에서는 염치도 없고 창피함도 없는데 이런 일은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일어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이병헌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품질은 보증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늘 이름값을 하는 김선영과 박서준, 그리고 의외로 선전하는 박보영까지. 그러나 가장 돋보인 배우는 박지후였다. 이제 진짜 어른 연기자가 되었다고 느꼈다.  

'소방호수 사건' 이후 졸지에 아파트 대장이 된 이병헌이 황궁아파트에 들어가게 되는 사연을 끼워 넣은 시퀀스를 보면서 우리나라 영화가 얼마나 대담하고 능숙해졌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예전 같으면 망설였을 이런 아포칼립토까지, 이젠 뭐든 별로 겁먹지 않고 막 덤비는구나 하는 느낌. 웰메이드 영화다. 착상부터 CG, 음향 등 모든 게 뛰어나다. 유일한 단점은 주제나 전개방식이 어두워서 관객이 편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분명 데이트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애인을 잘 설득해서 이 영화 꼭 보시기 바란다. 메시지가 어떻게 다가가든 그동안 쌓아 놓은 한국영화의 저력이 보이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