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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1. 2023

재주는 오피가 부리고 돈은 미국이 먹었다는 이야기

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전쟁을 끝내기 위해, 즉 평화를 위해서는 적보다 먼저 치명적인 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건 논리 모순 아니냐는 본질적인 질문은 ‘노벨상도 다이너마이트 개발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현란한 대사로 입막음된다. 원작의 제목처럼 오펜하이머는 이미 인류에게 불을 가져가 주고 자신은 영원히 고문에 시달리는 프로메테우스로 상정되어 있다. 영웅에겐 적이 필요하다. 오펜하이머의 적은 정치인이고 정보기관이다. 마침 맥카시즘 시대였고  외골수 천재들을 실컷 써먹고 버리기 딱 좋은 상황이다.


아내가 월요일 아침 7시 CGV왕십리 아이맥스를 예약해서 큰 화면으로 본 영화다. 월조회(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 재결성이다. 회사를 안 다니니까 가능한 모임이다. 회사 안 다니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눈에 꽉 찬 화면에 들어오는 킬리언 머피의 표정은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지휘자 같다. 그의 고뇌와 환희에 따라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휘몰아친다.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조시 하트넷, 케네스 브레나, 게리 올드만은 모두 늙었고 연기를 잘한다. 플로렌스 퓨를 보며 박찬욱 감독도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 엄청난 대사가 나오며 세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무슨 영화를 만들어도 능숙한 스토리텔러의 면모를 과시한다. 편집도 장인의 솜씨다. 아내는 이래서 스토리의 힘이 무섭다고 했다. 영화로 미국의 생각을 계속 세상에 뿌려 왔으니까. 하긴 영화 중간에 놀란 감독이 J. F 케네디의 이름을 슬쩍 흘릴 때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미국의 입장에 서서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반증이다. 너무 재밌고 잘 만든 영화지만 결국 거대한 상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건 안티팬이 생기거나 불매운동이 일어나면 안 되는 글로벌 기업의 제품이다. 그래서 ‘남의 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놀란의 속마음이 어떻든 이 영화는 미국의 양심은 복잡하고 미국은 나름 번뇌한다는 얘기를 늘어놓는 세련된 프로파간다라는 생각을 당분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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