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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1. 2023

우리는 왜 남의 삶이 부러울까?

부희령의 「구름해석전문가」  리뷰

 

세상에 단편소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출간된 지 좀 된 부희령 소설집의 표제작 「구름해석전문가」를 콕 집어 언급하는 것은 영화평론가 오동진 기자의 말마따나 이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올해는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즐거운 예감 때문이다. 이 소설은 ‘구름해석전문가’라는 있지도 않은 단어를 통해 나보다는 타인이 더 잘 알고 그럴듯한 삶을 살 것이라 여기는 우리 내면의 나약함을 다룬다.  

이경은 소설을 쓰고 싶어서 포카라에 왔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가 시작되는 곳이니까 여기 오면 쓰고 싶은 소설도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가냘픈 기대 때문이다. 여기서 자신을 구름해석전문가라고 우기는 상운을 만난다. “산을 완전히 보려면 구름 아래 있어도 안 되고, 구름 속에 있어도 안 되고, 구름 위에 있어야 해요.”라는 상운의 말은 얼른 들으면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경은 혹시나 하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건 자신과 잠깐 연인 사이였던 소설가 선우의 노트북을 포카라까지 가져온 행위와도 비슷하다. 선우가 잠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이경에게 맡겼다가 다시 돌려 달라고 애걸하는 그 노트북은 비밀번호를 몰라서 열 수가 없다. 이경은 노트북이 열리기만 하면 자신의 소설도 자동으로 시작될 것이라 믿으며 선우가 자주 가는 카페, 이야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숫자, 5년째 거주하고 있는 연립주택의 이름 등을 빈칸에 넣어보지만 그 어떤 것도 화면을 여는 열쇠가 되어주지 못한다.  


소설은 포카라라는 낯선 곳에 온 이경과 거기서 만난 상운, 진상, 그리고 한국에서 문자메시지를 보내오는 선우까지 체스의 말처럼 부리며 허상을 좇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다. 우리는 왜 남의 삶을 부러워할까. 자신의 인생에 뚫린 빈 구멍들이 이따금 바람소리를 내서일까. 비밀번호 얘기는 이 책에 있는 다른 소설 「완전한 집」에도 등장하는데, 아마도 부희령은 그렇게 인생이 간단하게 풀리는 번호 같은 게 정말로 존재하겠느냐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선우의 노트북도 히치콕의 영화에 등장하던 ‘맥거핀’ 일뿐 큰 역할은 하지 못한다. 나는 그래도 마지막에 이경이 젖은 풀잎과 두려움을 헤치고 덤불 속에서 볼일을 보고는 선우의 삶에 대한 집착을 버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기댈 데 없이 허술한 상운의 말을 떠올리며 어둠 속에서 혼자 웃는 장면도 좋았다. 오래전 읽은 양귀자의 「한계령」이 떠오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좋은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상쾌한 기억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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