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Sep 14. 2023

사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상한 가족'

연극 《뉴클리어 패밀리》

  

요즘은 TV나 영화는 물론 내 주변에도 게이 또는 트랜스젠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 20세기 들어 갑자기 게이들이 출몰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예전에도 많았는데 다들 숨기거나 참고 살아서 우리가 몰랐을 것이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성 정체성이 다른 구성원들을 한 가족으로 묶어버린 재밌는 연극 한 편을  보았다. 극단 고래의   정기공연작인  <뉴클리어 패밀리> 다.

50세가 넘어 게이로서의 삶을 영위하기로 결심하는 아빠,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이 되고 싶어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려는 딸, 그리고 5년째 취직을 못해 차라리 유학을 갈까 생각하는 아들과 집을 나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는 엄마까지, 이렇게 네 식구가 엄마 생일파티를 계기로  거실에 모인다(엄마가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기정 자매의 엄마로 나왔던 이경성 배우다). 어떻게 이렇게 극적인 가족이 존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알레고리가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게 연극만의 매력이라고 대답하겠다.


앞다투어 자신이 바라고 꿈꾸는 삶을 고백하던 네 식구는 갑자기 울리는 '국가적 재난 싸이렌' 소리에 혼비백산한다. 국제 분쟁 때문에 핵폭탄이 발사되어 우리나라에 떨어지고 그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방사능에 피폭되어 즉시 사망하게 된다는 무서운 뉴스였다. 졸지에 집안에 갇힌 네 식구는 국가에 의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소수의 생존자'로 선택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환호작약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조건이 가족 중 딱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 중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아야 하느냐?'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킬링 디어》와 똑같은 딜레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선택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선택을 포기하면 모처럼의 생존 기회를 날리고 20분 후엔 공멸하기에 , 그들은 선택을 한다.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연설문으로 만들어 각자 피칭을 해보기도 하고 먼저 죽어야 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투표도 해본다. 그렇게 해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다. 과연 맨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일까?

프레스콜에 초대받아 간 자리라 연극이 끝나고 연출자 겸 작가와의 질의응답 기회가 주어졌다. 장명식 연출은 "처음엔 각자 생긴 대로 열심히 살아가는데도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 사람이 많은 걸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 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실제로 유학 시절 자식들을 다 키운 뒤 커밍아웃을 한 옆집 아저씨를 보고 아빠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뉴클리어 패밀리'라는 제목은 현대의 핵가족 제도의 일반성과 핵폭발이 가져온 극한 상황을 모두 담기에 제격이다. 장 연출은 자신도 지식인으로서 이미 만들어진 제도와 사회적 규약을 따르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타고 난 정체성 대로 살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연극을 만든 듯하다. 첫 공연을 앞두고 기자와 작가들을 앞에 두고 하는 무대였지만 진지하고 꽉 찬 무대였다. 2023 극단 고래의 '신진 연출가 지원작'이다. 그러니까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우리는 장명식 작가의 작품을 계속해서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기대를 갖고 계속 지켜보고 싶은 연출가 겸 작가다. 오늘부터 9월 17일까지 대학로 시온아트홀에서 상연한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연극을 원하는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닌 시민 조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