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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16. 2023

이런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지

배리어 프리 음악극 《합체》

합과 체는 쌍둥이 형제다. 오 씨 집에서 태어났으니 각각 이름이 오합과 오체이고 홍준기 배우, 강은일 배우가 역을 맡았다. 둘은 저신장 장애인인 아버지를 닮아 키가 너무 작아 고민인데 어느 날 북쪽 약수터에서 만난 계도사의 말을  따라 계룡산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33일만 수련하면 키가 큰다는데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더라도 둘은 쌍둥이 형제이므로 함께 수련을 해야 효과가 크다는 계도사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키가 좀 컸으면 하는 고1 남학생들의 소원이 사소해 보이나 나름 간절하기도 해서 귀여운데 음악극 특유의 꽉 찬 활기가 110분을 조금의 지루함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특이한 건 이 모든 게 ‘배리어 프리’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시각장애인인이나 농인 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사전 설명을 충분히 하고 주요 배역들 옆엔 수어 배우들이 '그림자 통역'으로 붙어 실시간 연기를 한다. 그러니까 합과 체가 등장하는 장면엔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배리어 프리 공연은 처음인데 연기와 음악의 합이 기가 막히다. 이전 공연들과 달리 여기에서는 수화 번역 배우들도 적극적으로 연기를 하기에 합과 체 옆의 배우들을 보면 그들의 또 다른 자아를 목격하는 느낌마저 든다.


다른 배우들도 모두 뛰어나지만 극의 흐름을 설명하는 라디오 DJ 지니 역의 정다예 배우는 놀랍다. 딕션이면 딕션, 노래면 노래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던 것이다. 극이 모두 끝나고 리플렛을 다시 찾아보니 뮤지컬 무대를 휩쓸고 다닌 배우였다. 게다가 안무가가 따로 있어서 배우들의 움직임이 너무 부드럽고 멋졌다. 누구라도 이 연극을 본 사람은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의 아름답고 역동적인 율동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농구는 키로 하는 게 아니야."라는 체육선생의 말 뒤에 따라붙는 합과 체 아버지의 "좋은 공이란 잘 튀어 올라야 한다"는 대사에서는 회복 탄력성이야 말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최상의 덕목임도 알려준다. 이 연극은 박지리 작가의 소설을 정준 작가가 극본으로 다시 썼다고 하는데 체의 이름에서 체 게바라를 생각해 내 내부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대사가 자연스럽고 70년대 말 조세희가 쓴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언급함으로써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보여주는 훌륭한 극본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 가장 진화한 형태의 배리어프리공연'이라는 세간의 평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극장을 나서며 정말 좋은 작품을 보았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이런 좋은 작품을 나흘밖에 안 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바로 이런 아쉬움이 연극을 보는 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국립극장이 아니었으면 만들지 못할 연극이라는 생각을 했다. 흥행만을 생각한다면 만들 수 없는 이런 공연들도 공공기관의 도움으로 계속 만들어져야 연극계 , 나아가 창작 분야 전체의 불씨들을 횃불로 키울 수 있는 저력이 생기는 것이다. 부지런히 연극을 찾아보고 있지만 그래도 어제처럼 이런 극을 보는 건 여러 가지 의미로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2023년 9월 17일 일요일까지 극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상연한다. 배리어프리 연극으로도 그냥 음악극으로도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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