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Sep 17. 2023

사람들은 왜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할까?

독하다 토요일에서 읽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한 달에 한 번 모여 책을 읽고 술을 마시는 모임 '독하다 토요일'의 이번 달 책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였습니다. 그동안 영화로 소설로 여러 번 접했던 작품이죠. 저는 대학 때부터 이 책을 읽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구체적이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닉이 톰 뷰캐넌의 집에 가서 조던 베이커를 만났던 것도 몰랐고 톰이 사귀던 유부녀 이름이 머틀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습니다(물론 전에 알았겠죠. 근데 까먹었겠죠). 혜자 씨는 소설을 읽으며 '그때도 하이볼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술이 그때도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피츠제럴드의 서술과 묘사력이 너무 뛰어나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너무 멋지다, 라는 소감을 말했습니다. 아름 씨는 개츠비의 화려한 파티와 무모한 집착 때문에 때문에 소설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면서 그가 왜 데이지를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어쩌면 그가 사랑한 것은 데이지가 아니라 데이지라는 거대한 사랑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거죠.


개츠비가 바라보던 만 저쪽의 초록색 불빛과 그 불빛을 닮은 칵테일 이야기를 하며 아름 씨와 미경 씨가 웃었습니다. 미경 씨는 집에 초록색 스탠드까지 있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들으며 데이지가 살고 있는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을 개츠비를 한 번 더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장례식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장면이 화려한 파티 장면들과 비교되면서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효성 씨는 이 소설이 산업혁명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특히 미국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미경 씨도 시민계급으로 접근했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아비투스 얘기도 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를 통해 개인의 습성이나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나게 된다는 이론을 얘기한 거죠. 저는 닉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연인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의 다음 행동을 상상해 보는 그가 너무 쓸쓸하고도 아름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는 문장을 넣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죠.


아무튼 저는 닉이 동부로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을 읽다가  '중서부 지방은 이제 세계의 활기찬 중심지가 아니라 우주의 초라한 변두리 같았다. 그래서 나는 동부로 가서 채권업을 배우기로 결정했다.' 같은 평범한 문장에도 홀딱 빠져버렸습니다. 찬찬히 읽을수록 사람을 더 빨아들이는 소설이더군요. 동현 씨는 소설가 김영하가 마술사 후디니 얘기를 거론하며 '위대한(Great)'이라는 표현에 대해 했던 생각을 전해주기도 했고 영어 원서를 들고 와 위화감을 조성한 기홍 씨는 평소처럼 자기는 할 말이 없다고 뒤로 빼다가 나중에  뭐라 뭐라 길고 깊은 얘기를 했는데 제가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너무 바쁜 날이라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려다가 이 글부터 후딱 써야겠다 생각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거든요.


원래 이번 모임은 효성 씨가 예약해준 영천의 브르어리304에서 만나 맥주를 한 잔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므로 2차는 없다고 했지만 소설도 매우 술을 부르는 내용이고 마침 비도 오고 해서 시장 안으로 들어가 한 잔씩 더 하고 헤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왜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는 걸까요?  일단 개츠비가 너무 돈이 많은 부자이고 그러면서도 전혀 행복하지 못한 사내였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가 소설을 읽거나 연극을 보는 건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일, 이라는 혜자 씨의 말이 다시 생각납니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어서 소설을 읽는다는 박연준 시인의 말도 떠오르고요. 어쩌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인생의 비밀을 조금은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쓸데없고 아름다운 행위를 계속하는 거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