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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21. 2023

연극을 보며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

연극 《카르멘》을 보고

비제의 오페라로 제목이 낯익은 《카르멘》을 연극으로 보았다. 서울시극단의 고선웅 단장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카르멘'의 줄거리나 내용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나도 이번에 공연을 보면서 카르멘이라는 집시 여인이 돈 호세와 사랑에  빠져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오페라 대본과 달리 연극에서는 보다 다채롭고 자잘한 내용들이 추가되어 꽉 찬 재미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친구들보다 연애 능력이 출중한 집시 여인 카르멘은 자신의 애인 중 한 명이었던 주니가의 소개로 돈 호세를 만나 홀딱 반한다. 그녀의 열렬한 구애에 굴복한 돈 호세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고향의 약혼자 미카엘라를 버리고 카르멘과의 사랑을 택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법. 사랑이 식은 카르멘은 돈 호세를 차갑게 대하며 이전처럼 다른 남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이에 격분한 돈 호세는 울며불며 그녀에게 매달리다가 결국 일을 저지른다.


고선웅 연출은 "돈 호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이 이번 연극에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 문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카르멘을 팜파탈로 다루었던 이전까지의 해석을 뒤집어 돈 호세야말로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로 본 것이다. 시대의 반영이고 진보적인 해석인 이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의도 말고도 연극에서는 해야 할 것들이 많다.  

문제는 이 연극이 대사를 시(詩)처럼 구사라는 시극(詩劇)이라는 점이다. 고선웅의 장기인 의고체와 시적인 대사들은 이 연극에서 빛을 발하는 게 아니라 마치 '음악이 빠진 뮤지컬 대사'처럼 들렸다. 시어처럼 쓰인 대사를 소화하느라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은 더 들어오지 못했고 극은 별다른 사건 없이 파국을 행해 치달았다. 연출가와 연기자들의 교감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고 연출자의 욕심일 수도 있다. 카르멘 역을 맡은 서지우 배우의 열연이 돋보였으나 남자 주인공의 카리스마가 받쳐 주지 못했고 다른 등장인물들도 다 잘하는 건 알겠는데 뭔가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연극을 보고 일어서며 고선웅의 이전 작품 《조씨고아: 비극의 씨앗 》이나 낭독극 《찻집》을 보며 내가 열광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두 작품 모두 이야기가 풍성했고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요소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진진했다. 어쩌면 연극을 보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런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이 아니었을까. 이번 연극은 그런 면에서 아쉬웠다. 나쁜 평은 안 쓴다는 게 내 리뷰의 원칙인데 이런 글을 쓰게 되어 씁쓸하다. 그러나 고선웅 단장이나 서울시극단의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볼 것이기에 진심을 담아 이 글을 쓴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나와 다르게 본 분들도 계실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또 다른 리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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