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처가의 캘리가 디지털로 갈아탑니다
그제 아이패드 에어를 샀습니다. 저는 가끔 '공처가의 캘리'라는 걸 쓰는데 이제 종이 말고 디지털로 옮겨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가 '디바이스 덕후'인 이기원 작가에게 물어보라고 했고, 시킨 대로 요즘 얼룩소의 인기 작가인 이기원 작가에게 물어봤더니 당장 당근에서 미개봉 아이패드 에어와 펜슬을 싸게 파는 판매자를 찾아 연결해 준 것입니다. 애플은 짝퉁이 없기 때문에 미개봉 제품이면 믿을 만하다는 이 작가의 추천 멘트였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저는 당장 판매자에게 연락을 해서 현금으로 아이패드를 덜컥 샀습니다. 이기원 작가는 공처가의 캘리를 제대로 쓰려면 종이질감 액정보호필름을 꼭 사서 붙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걸 잊지 않았고요.
그런데 그제 저는 연극을 보고 나서 아내와 성북천에 있는 단골 전집인 잔칫날에 가서 두부김치와 야채전에 한라산 소주를 마셨으므로 아이패드 에어를 제대로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사실은 집에 와서 괜히 열었다가 아내에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애플 제품을 맨 정신에 열어도 심란한데 소주를 한 병 이상 마신 상태로 열다니 정말 미친 거죠).
새벽에 일어나 아이패드를 다시 열고 동기화를 시도했습니다. 역시 애플 제품은 메인 화면을 여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매우 힘이 들더군요. 모든 기계로부터 배척을 받는 운명을 타고 난 제가 아이폰과 아이패드 에어를 동기화시키는 데는 여러 번의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예상대로 저는 애플의 비밀번호를 또 모르고 있더군요. 비번을 새로 만들고 여러 번의 ‘에러’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아이패드 에어에 아이폰을 동기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꼼짝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한 게 겨우 그건데 벌써 날이 밝아 아홉 시 반이 되었더군요.
그때 이기원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녁에 세종문화회관 객석에 앉아 아이패드 에어를 개봉하는 동영상을 아내가 카톡으로 보냈더니 그걸 보고 아이패드 에어의 안부가 궁금해서 연락을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패드 에어를 겨우 동기화시켰으나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이 작가가 추천한 굿노트 사용법도 익혀야 하니 직접 만나 과외를 좀 받아야겠다고 우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기원 작가가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지금 바로 자기 동네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11시에 폴바셋 서대문역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더니 아내가 “아유, 기집애들처럼 전화로 한참 수다를 떨다가 자세한 얘긴 만나서 해, 하고 끊은 거야?”라며 두 사람을 비웃었습니다. 아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11시에 서대문 폴바셋에 도착하니 이기원 작가는 이미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아이패드로 카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의 아이패드 에어를 꺼내 이것저것 점검을 했습니다. 이기원 작가는 요즘 아이패드와 모니터를 연결해서 극본을 쓰는 학생들에게 현장 첨삭지도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게 남는 휴대용 모니터를 하나 주었습니다. 잘 활용해 보라고 하면서 말이죠. 제가 쓸데없는 어플을 너무 많이 깔아서 굿노트 구동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하길래 이름도 생소한, 그러나 다 제가 깔아 놓은 어플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웠습니다. 그리고 굿노트 어플로 글씨를 써봤습니다. 너무 미끄러워서 유리판 위에 볼펜으로 긁는 느낌이 나더군요. 이기원 작가는 “이래서 종이질감 액정보호필름을 붙여야 해요."라면서 점심을 먹기 전 매장에 가서 얼른 필름부터 사서 붙이자고 했습니다. 커피숍을 나와 한참을 걸어 엄청나게 큰 오피스 디포에 갔는데 액정보호필름은 없다고 해서 온 김에 거치대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저렴한 것으로 사고 다시 애플 매장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시청역 근처에 프리스비가 있었고 거기엔 정말 종이질감의 액정보호필름을 팔더군요. 그걸 한 장 골라서 '매장에서 붙여줄 수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미련 없이 오전 원을 더 내고 붙여 달라고 했습니다. 제 손으로 붙이면 기포가 생기거나 먼지가 들어갈 게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전하게 필름을 부착하고 나서야 파이낸셜센터 근처에 있는 북엇국집에 가서 밥을 먹고 이기원 작가와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아이패드 에어 위에 글씨를 써봤습니다. 아직 글씨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세계더군요. 이제 공처가의 캘리는 물론 인스타그램의 히든북스(@hidden__books) 계정, 나아가 글쓰기 강연 PPT에도 제 글씨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걸 하고 싶어서 아이패드 에어를 샀지만 다른 데에도 활용해야 하겠죠.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아니, 아이패드를 사서 기껏 저런 데만 쓴단 말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당신의 아이패드 활용법을 알려 주십시오. 아내는 저보다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지만 제가 물어보면 잘 안 가르쳐 주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