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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7. 2023

예쁘고 통찰력도 있는 독립영화

영화 《너를 줍다》 리뷰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시대다. 괜찮은 남자 같아서 만났는데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놈도 있고 정치의식이 형편없거나 가부장제에 절어 사는 경우도 많아 아예 연애를 포기했다는 여성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일베나 극우로 밝혀지기도 하니 웃을 일만은 아니다. 그럼 그 사람이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알아보느냐.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을 살피고 본인과도 시간을 두고 대화를 나눠보는 게 정석이다. 같이 여행을 가거나 도박을 해보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다 친해진 다음의 일이다. 홈쇼핑 회사에서 시니어 MD로 일하는 지수(김재경)는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방법을 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글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올리니까 버려진 것을 조사하면 그 사람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하성란 데뷔 소설로 읽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맞았다.  영화  《너를 줍다》는 하성란의 단편 <곰팡이꽃> 임을 밝히고 있었다.


쓰레기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가슴 아픈 이별의 흔적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증거가 차고 넘치기도 한다. 지수는 ‘최선을 다해 깔끔하게 정리해서 버린 듯한’ 신기한 쓰레기봉투의 주인이 바로 옆집에 사는 우재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접근한다. 그가  안시 롱핀이라는 물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쓰레기봉투를 통해 얻은 것이다. 고무장갑을 끼고 앉아 남이 버린 쓰레기를  신중하게 분류하고 기록하는 지수의 모습은 싸이코 범죄인과 같지만 그래도 거부감 없이 이야기 흐름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김재경 배우의 매력과 성실한 연기 덕분이다. 화려한 외모의 김재경은 낮은 목소리와 분명한 딕션으로 약간 이상한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 현우도 깔끔하게 생겨서 초반엔 풋풋한 청춘물 느낌이 나지만 지수의 쓰레기 수거 행각이 밝혀지는 클라이막스에서는 서스펜스적으로 변한다.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김재경 배우의 연기력이 빛나고 심혜정 감독의 주제의식도 선명한 영화다.


우리는 한옥을 통해 김재경 배우와 친해진 케이스인데(그녀도 한옥에 산다) 어제 초대받아 간 VIP 시사회에서 만난 김 배우가 ”왜 그 좋은 한옥을 내놓으셨느냐”라고 따지듯 묻는 바람에 어이가 없어서 깔깔깔 웃었다. 일본영화처럼 소박하고 예쁜 데다가 통찰력까지 겸비한 좋은 영화였다. 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지자 관객들이 바로 뒤에 앉아 있던 김재경 배우에게  많은 박수를 보냈다. 내가  “연기력, 짱!”이라고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더니 김재경 배우가 좋아했다. 시사회 기간이 지나면 개봉이다. 관심 갖고 시간 내서 한 번 보시기 바란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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