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이 책 재밌다. 은유 작가가 시를 번역하는 사람들만 모아 인터뷰한 책인데 다른 사람들도 좋지만 특히 안톤 허 편이 너무 즐겁다.
안톤 허는 박상영 작가나 정보라 작가의 소설 번역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굉장히 왈가닥스러운 게 글인데도 느껴져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이성복의 『무한화서』 얘기가 나와서 더 반가웠던 것 같다. 맨 처음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대목(지금 두 번째 읽는다)은 '부커상 쇼트리스트에 오르는 것과 상을 타는 게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상작 발표 후 '못 탔어' '불발' 이런 얘기 많이 하는데 외국에서는 그런 소리 하지 않는단다. 그냥 '쇼트리스트 후보' 또는 '더블 롱리스트 후보'라고 한다.
번역하고 싶은 게 생겨도 누가 지금 작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서 그걸 알아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쓴다는 등 나름 번역가로서의 고충을 느낄 수 있는 인터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을 만나면 너무너무 번역하고 싶어 저절로 '영어가 들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갖는 편견이 굉장히 폭력적인데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야, 우리 니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피상적인 사람들 아니야, 라고 말하기 위해서라도 문학작품들을 번역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아무리 과학 논문을 많이 내고, 삼성이 세계를 지배해도 아직까지 그런 편견을 갖는 걸 보면 다른 영역으로 우리를 보여줄 수밖에 없어요.")
은유 작가가 이 인터뷰를 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는
책에 있는 글과 사진을 보면 안다. 물론 즐거움만 있는 건 아니다. 인터뷰 도중 호모포비아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자에 대한, 여성혐오주의자에 대한 분노도 만날 수 있다.
서촌그책방에 놀러 갔다가 하영남 사장님이 권해서 가져온 책이다. 역시 그분의 추천은 짱이다. 안톤 허가 요즘 관심 가는 젊은 시인과 시집이었다고 한 최재원의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를 산다고 하고 아직 못 샀다.
오늘은 김장을 하는 날이니 틀렸고 내일 사야겠다. 다른 인터뷰들도 재밌으니 얼른 사서 읽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