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뛰쳐나오고 싶었던 영화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

by 편성준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더 킬러》에서 주인공 마이클 패스빈더는 끊임없이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총을 겨눈다. 그가 초반에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세상엔 행운도 업보도 없고, 유감스럽지만 정의 같은 것도 없다. 그런 컨셉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건 없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오늘 극장에서 《서울의 봄》을 보면서 그 대사가 다시 떠올랐다.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정의나 사필귀정 같은 게 존재한다면 전두광 같은 악마가 성공할 리가 없다. 평생을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다 자연사할 리가 없다.


생각해 보니 12.12 쿠데타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40여 년 전 사건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데 거기에 황정민이라는 괴물 연기자가 펄펄 날아서 기어코 작품을 명작 반열에 올려놓는다. 황정민이 연기를 잘하면 잘할수록 전두환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김의성이 찌질한 연기를 잘하면 잘할수록 국방장관 노재현이 얼마나 비겁한 놈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런데 왜 전두환이 아니라 전두광이고 장태완이 아니라 이태신이냐고? 그놈의 '명예훼손' 때문이다. 사자명예훼손죄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게 창작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김성수 감독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살짝살짝 바꾸었던 것이다. 전두광이라고 해도 우리는 전두환인 줄 다 알지 않는가. 그러면 된 것이다.


이런 영화는 천만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 년에 극장 딱 한 번 가는 사람들도 봐야 하고 세대 구분 없이 노년이나 청년 할 것 없이 관객몰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에게 12.12나 '신군부'는 너무 먼 얘기다. 그러니 공부 삼아 보라고 강요하지 않고 보게 하는 방법은 이 영화 자체를 '트렌드'로 만드는 것뿐이다. 눈만 뜨면 이 영화 얘기가 나오고 뉴스에도 뜨고 해서 뒤늦게라도 이걸 보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울화가 치밀어 뛰쳐나갈 뻔했다. 그러나 꾹 참고 끝까지 두 눈 부릅뜨고 보았다. 나는 한 번 더 볼 용의가 있다. 그만큼 가치가 있고 영화적으로도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출연진을 좀 보라. 너무 쟁쟁해서 입이 안 다물어진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극장표값이 아깝지 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재밌는 인터뷰집 하나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