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쓰기 강사의 기쁨과 슬픔

문지혁의 『중급 한국어』

by 편성준


어제 새벽에 일어나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강양구 기자가 쓴 글을 읽다가 문지혁의 『중급 한국어』라는 책을 리디북스로 샀어. 어, 이건 읽어야 해, 라는 느낌이 왔거든. 무엇보다 대학에서 글쓰기 강사를 하는 남자 이야기라니까 뭐라도 좀 얻을 게 있을 것 같았어. 물론 그가 이 책 이전에 쓴 『초급 한국어』는 읽지 않은 상태였어. 대신 그가 번역한 『라이팅 픽션』이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같은 책을 먼저 읽었지. 내 첫 책에서 인용했던 '인간은 음식 없이 40일, 물 없이 3일을 살 수 있지만 의미 없이 35초를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는 리사 크론의 이야기가 바로 '끌리는 이야기는...'에 나와요.

이 소설은 등단을 하지 못한 채 몇 권의 책을 내고 바다가 보이는 대학교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게 된 작가 문지혁과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며 코로나 19에 걸려 고생하던 그의 아내, 그리고 은채라는 딸이 나와. 물론 가명이지. 책 뒤 '작가의 말'을 보면 채윤, 채희라는 진짜 딸들 이름이 나오니까. 책은 재미있어. 자서전을 써보자는 말로 시작하는 글쓰기 강의실 얘기도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지만 어렵게 태어난 첫 딸이 얼마나 자주 엄마 아빠의 수면을 방해하는지 읽는 것도 의외로 흥미진진하지.


문지혁은 강의 시간에 많은 작가들을 소개하지. 셰익스피어는 물론 커트 보니것,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레이먼드 카버, 롤랑 바르트, 올리버 색스 등의 책과 말을 정성껏 시시콜콜 읽거나 암송해 줘. 그의 정성에 응답하듯 '삶'이라는 글자는 압축파일 같다는 어느 학생의 말은 선생으로서 보람을 느끼게 하지. 하지만 그가 소개한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주인공 구로프를 학생들은 너무 싫어해. 소설 자체도 역겹다고 하고. 그런 느낌은 학생들이 남긴 강의평가에도 그대로 드러나. '여혐 가득한 글을 소개하고 마구 변명을 늘어놓는 강사'라는 식의 평가는 너무 가혹해서 작가의 가슴을 할퀴지. '수업은 일주일에 하루였지만 수업 준비에는 일주일이 걸렸다'라는 그의 말에 동감하던 나도 카피라이팅 중간고사가 끝난 뒤 '도대체 뭘 배워가는지 모르겠어요'라는 학생의 평가 글을 읽고 괴로워한 적이 있어서 문지혁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어. 그리고 그가 첫 책을 내고 나서 "나는 책을 내면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거나, 아니면 기분이라도 좋아질 줄 알았다."라고 쓴 글을 읽고 깔깔깔 웃어야 했어. 자신이 첫 책 인세로 얼마를 벌었는지 꼽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글프고 귀여운 푸념이거든.


하지만 그의 글쓰기 신념은 흔들리지 않아. 소설의 주인공은 어딘가 떠났다 돌아오는 건데, 떠날 때보다는 뭔가 조금은 달라져 있는 게 조지프 캠벨의 유명한 '영웅 신화'라고 알려 주거나 소설의 주인공은 반듯하고 정의롭기보다는 뭔가 어긋나고 실패하고 부서진 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이 그런 것들이지. 일상을 쓰라는 조언이나 '디테일이 없는 글쓰기는 글쓰기가 아니라 그냥 생각의 덩어리일 뿐'이라는 충고는 나도 글쓰기 강연에서 늘 하는 말이라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며 읽을 수밖에 없었지. 한 강의 챕터에서는 내가 세상에서 단편소설을 딱 세 편만 남긴다고 해도 살아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레이먼드 카버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이야기가 잔뜩 나와서 너무 좋았어. "지금은 2023년 1월 21일 오후 6시. 나는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라는 글을 읽다 보니 어느덧 소설의 끝이었어. 장편소설 한 권을 집 책상과 전철 안에서 하루 만에 다 읽은 거야. 제목은 알쏭달쏭한'중급 한국어'지만 다 읽고 나면 등단하지 않고 책을 몇 권 낸 소설가 겸 번역가가 글을 쓰며 느꼈던(그리고 지금도 느끼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돼. 나는 니가 하루만 시간을 내서 이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어. 좋은 건 나눠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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