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영화 《딸에 대하여》
대학 강사로 일하는 딸이 어느 날 엄마가 살고 있는 집으로 애인과 함께 들어온다. 돈을 빌려 달라길래 없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살러 온 것이다. 그런데 딸이 애인이라고 데려 온 사람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둘은 레즈비언인 것이다. 객석에서 영화를 보는 나는 "레즈비언이 뭐 어때서?"라고 할 수 있지만 영화 속 엄마는 그러지 못한다. 요양병원에서 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원래 좀 고지식한 데다가 찾아오는 가족 한 명 없이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을 돌보며 자기 딸이 나중에 이 사람처럼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둘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한다. 둘을 떼어 놓으면 혹시라도 좋은 남자를 만나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이미랑 감독의 영화 '딸에 대하여'는 레즈비언 문제도 나오고 보호사의 고충도 펼쳐지지만 결국은 사람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젊었을 때 좋은 일도 많이 했던 할머니가 요양원에서는 기관에 이용만 당하고 보조금도 끊겨 열악한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을 보다 못한 엄마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지만 동료들은 '가족도 아닌 남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혀를 찬다. 놀라운 것은 딸 커플이다. 딸 그린의 애인인 레인은 뜻밖에도 할머니를 따뜻하고 섬세하게 돌봄으로써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다. 한편 딸 그린은 대학에서 억울하게 잘린 동료를 위해 맹렬하지만 유쾌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보여주는 장례식 장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주 완장을 찬 두 여성(남자분은 안 계세요? 이런 일에 남자 여자가 무슨 상관이에요?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은 아무 사이도 아닌 할머니의 빈소를 밤새 지키며 찾아온 동료들과 함박웃음을 웃고 엄마는 그런 아이들 목소리를 들으며 편하게 잠이 든다.
자칫 무겁거나 흥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미랑 감독은 과하지 않게 잘 이끌어 갔고 오민애 임세미 하윤경 등 배우들은 정확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 낸다. 특히 처음에 엄마한테 철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굴던 그린이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 이성적이고 공격적으로 돌변하는 모습은 임세미가 얼마나 집중력 뛰어난 배우인지 잘 보여준다. 49회 서울독립영화제 2023 본선 장편 경쟁작인데 오늘 CGV압구정 시사회에서 보았다. 초대해 주신 아토의 제정주 PD가 성북동 주민이라고 해서 반갑게 인사드리고 내년엔 동네에서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아주 잘 만든 인디영화이니 개봉하면 꼭 찾아 극장에서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