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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08. 2019

왜 나한테 자꾸 이런 거 시켜요?

월조회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아무리 조숙한 소년이라도 아이는  아이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 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은데,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제 겨우 만 열여섯 살인 피터는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매력 쩌는 학교 친구 MJ와 잘 될 수 있을까만 생각하기에도 하루가 모자란다. 그런데 해피 호건이니 닉 퓨리니 하는 어벤저스 형님들이 자꾸 연락을 해온다. 연애도 좋지만 너는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짜증 난다. 어쩌다가 나는 토니 스타크가 지목한 후계자가 되어 이렇게 사생활도 없는 빡센 히어로 생활을 해야 한단 말인가.

월요일 아침 조조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인 '월조회'의 이번 주 관람작은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이었다. 전작인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다음 이야기인데 힘과 스피드가 남아도는 청소년 스파이더맨이 주인공인 관계로 역동적인 액션과 전투씬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여기에다가 심각한 지구 지키기와 사소한 연애하기가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갈등이 설득력 있게 짜여져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언맨]의 감독이기도 하고 [아메리칸 셰프]에서는 주인공까지 했던 해피 역의 존 파브로가 반가웠다. 그리고 반전 있는 빌런으로 등장하는 제이크 질렌할의 매력도 정말 좋았다. 이모인 마리사 토메이가 바나나를 던지며 "총알도 피하면서 바나나는 왜 못 피하냐?"고 놀리는 깨알 유머도 히어로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농담 같아서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 미스테리오가 피터를 속여 토니 스타크의 안경을 얻은 뒤 카메라가 빙 돌며 술집 주인과 손님들 모두가 한통속이었음을 밝히는 장면은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스팅]의 오마주여서 잠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영화는 청소년인 스파이더맨이 "왜 어린 나한테 자꾸 이런 거 시켜요?"라고 항변하는 듯한 분위기지만 결국 그는 토니의 안경도 되찾고 책임감을 다 하면서 조금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은 오전 아홉 시 시작 영화였는데 역시 월요일 출근하느라 인상을 쓰고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극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각별했다. 더구나 제작비 1억 6천만 달러짜리  영화를 단 돈 7,000원에 볼 수 있다는 쾌감을 만끽하기 위해서 차비가 들지 않는 대학로CGV로 극장을 선택했다. 나의 월요일 오전은 이렇게 쪼잔하고 사소하게 시작되었다가 영화가 예상대로 재밌는 바람에 아주 상쾌하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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