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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05. 2019

길 위에서 읽는 시 이야기

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 보기]


성북동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영동세브란스병원 영안실로 갔다가 다시 집으로.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대로 밥을 챙겨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고 초조하게 돌아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아침에 충동적으로 배낭에 집어넣었던 '황현산의 시 이야기' [우물에서 하늘 보기]를 조금씩 조금씩 들춰 보았다.


전에 읽었던 부분을 휘리릭 넘기다 최승자의 <쓸쓸해서 머나먼>, <이 시대의 사랑>, <내 무덤 푸르고> 등의 시집을 다룬 '최승자의 어깨'라는 챕터를 읽다가 다시 리와인드. 루쉰의 단편 소설 [고향]의 줄거리가 나오고 스무 살 무렵에 선생이 읽었다는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 소설 이야기 끝에 김종삼의 짧은 시 <북치는 소년>이 달려 나온다.  장 자크 베넥스의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영화 [베티 블루 37.2]가 등장했다가 랭보의 시와 카뮈의 [이방인]이 종횡무진 머리를 내민다. 서른네 살에 세상을 버린 시인 진이정의 생애에 왕가위의 [동사서독]과 [일대종사]의 평론이 엇갈린다.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을 고스란히 보내야 했던 죄책 끝에 예전에 아이들을 잃고 속절없이 시를 썼던 시인들의 시 - 정지용의 <유리창>, 김현승의 <눈물>, 그리고 다시 김종삼의 <민간인> - 아아, 민간인을 읽으며 울음이 샌다. 선생은 어쩌자고 이런 글들을 책갈피 사이사이마다 지뢰처럼 매설했던가. 그러다가 문득 졸려진 내 어깨를 내려치는 선생의 죽비 같은 문장.  


"책 한 줄 읽지 않고도 모든 것을 아는 우리들은 "산다는 게 이런 것이지" 같은 말을 가장 지혜로운 말로 여기면 살았다. 죄악을 다른 죄악으로 덮으며 산 셈이다. 숨 쉴 때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이 우리는 연결해주지 않으며, 품팔이 인문학도 막장드라마도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않는다.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금요일 저녁 지하철 4호선 안엔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로 넘쳐난다. 만원 지하철이라는 좁은 우물 안에선 하늘은커녕 다른 이의 땀구멍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제대로 사는 건 힘들더라도 몇 달에 한 번씩 황현산 선생의 책 [밤이 선생이다], [사소한 부탁], [우물에서 하늘 보기] 중 한 권을 집어 한 문장씩이라도 읽을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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