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을 굳이 극장에서 본 이유

평일 낮에 극장에 한 번 가십시오

by 편성준

아침에 일어나니 어쩐 일인지 조조영화가 급하게 땡기더군요. 그런데 요즘 극장은 조조상영이 예전 같지 않아서요. 한참을 찾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대신 CGV성신여대에서 아침 열 시에 시작하는 《나폴레옹》을 11,000원에 예매했습니다. 극장에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웬 나폴레옹?" 하더군요.

광고감독으로 시작해 상업영화의 거장이 된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23년에도 팔릴 영웅으로 나폴레옹을 점찍었다는 점에서 일단 땡겼습니다. 그리고 '일본 감독이 이순신 영화 만든 꼴'이라는 세간의 잔인한 혹평이 오히려 저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습니다. 86세 노장의 '과욕'을 대형 스크린으로 목격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니 진짜 과욕은 스콧 감독보다 호아킨 피닉스가 부렸더군요. 마리 앙뜨와네트가 처형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스무 살 의 나폴레옹부터 세인트 루이스에서 죽을 때까지 다 그가 연기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저는 자꾸 "오십 세, 오십 세"가 생각나는지요. 예전부터 저는 호아킨 피닉스는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라기엔 참 못 생겼다, 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주연뿐 아니라 제작자에도 이름을 올렸으니 제대로 욕심을 부린 것이죠. 물론 《조커》나 《그녀》에서 펼친 그의 연기를 너무 좋아합니다만.


호아킨 피닉스의 과욕을 그나마 눌러주는 건 조세핀 역의 바네사 커비의 노련한 연기력입니다. 데이비드 스카파의 시나리오는 너무 멋을 부려서 민망할 때가 많고요.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이 붕 떠보일 때가 많은 건 다 그의 덕분입니다. 아무래도 영국 감독이 미국인 각본가와 프랑스 영웅 이야기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그래도 제가 이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보기로 한 이유는 리들리 스콧 감독 정도의 스케일은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라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지금 억지로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나중엔 더 못 봅니다. 설령 나중에 OTT로 풀려 본다 해도 러닝타임 158분을 견디고 한 번에 다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경험 상 중간에 반드시 방해요소가 생깁니다.


예전에 《글래디에이터》 첫 장면에서 숲 하나를 시원하게 불태웠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 리들리 스콧 감독의의 전투 장면은 명불허전입니다. 특히 아우스터리츠 전투, 얼어붙은 호수에서 말과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꺼지는 얼음 속으로 들어가 익사하는 장면은 너무 압도적이고 잔인하고 아름답고 동시에 구역질이 나서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습니다. 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히 극장에서 영화 보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장면의 쾌감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충동적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가끔은 극장에 가는 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더구나 오늘처럼 큰 극장에서 총 관객 세 명이 유유자적하며 보는 경우엔 더 좋습니다. OTT 끄고 평일에 하루 극장으로 가십시오. 사는 맛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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