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어떤 책을 분명히 읽었는데 내용은 전혀 생각이 안 나고 딱 한 줄만 남는 경우가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도 다른 건 다 사라지고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대사 한 줄만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우였다. 아마도 이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 광고에 등장했던 로그라인이 너무 강렬해서 그랬던 모양이다(그때 이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선생님들에게 이 대사를 많이 날렸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교활한 것들).
어제 오후 우리 동네에 있는 사설도서관 '석천문화관'에 갔다가 이 책이 눈에 띄길래 빌려서 저녁까지 단숨에 읽었다. 소설엔 장 자끄 상빼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이 동화책처럼 여기저기 들어 있었다. 나무 타기를 좋아하는 한 소년의 눈에 비친 좀머 씨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어딘가를 향해 급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것은 배낭과 지팡이뿐이었고 잠시도 쉬는 걸 볼 수 없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길에서 그를 발견한 소년의 아버지가 태워 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승차를 거부할 뿐이었다. 이때 나오는 문장이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였다. 이 대사는 소설을 통틀어 좀머 씨가 했던 유일한 말이다.
그는 특별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생활비는 그의 아내가 인형을 만들어 버는 돈으로 충당한다는 소문이었다. 좀머 씨는 왜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무작정 걷기만 했던 것일까. 소년의 어머니는 그가 밀폐 공포증 환자라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해 그러는 거라고 했다. 이 책의 번역가는 맨 뒤 후기에서 2차 대전 이후의 상황을 배경으로 쓰인 것으로 미루어 보면 좀머 씨는 전쟁의 상흔을 가진 사람 같다고 추측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좀머 씨는 참으로 슬프고 쓸쓸한 사내였다. 소년이 딱 한 번 그가 멈춘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는 허겁지겁 배낭 안의 빵의 꺼내 사방의 눈치를 살피며 급하게 먹었고 물병의 물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는 일어나면서 배낭을 짊어지고 모자와 지팡이를 움켜쥔 채 헐떡거리며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무슨 마음으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모두 자전거를 탈 때처럼 멈추면 쓰러진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실제로 소년이 자전거를 배울 때 이런 물리학의 원리에 대해 깊이 천착한다.
그가 사라지고 2주 후 실종 신고를 한 주인집 아주머니는 그의 짐을 한쪽에 밀어 놓고 그 방을 여름 행락객들에게 빌려 주었는데 그들을 여름 행락객이라 부르지 않고 '도시 사람들'이나 '여행객'이라 불렀다. '여름'이라는 말이 그녀에게 다른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좀머(Sommer)는 독일어로 여름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쓸쓸해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냄새에 미친 매혹적인 악인이 등장해 사람을 홀리더니 이 소설은 정반대로 걷는 것에 미친 남자가 나와 내 마음을 할퀴고 사라졌다. 책을 다 읽고 이젠 『콘트라베이스』를 읽을 결심을 했다.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는 연극으로 공연되고 있을 그 소설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니 이건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