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또 매진될 연극을 미리 소개합니다

'공연배서비스 간다'의《템플》

by 편성준

갑자기 볼 만한 연극을 하나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지방에 살거나 외국에서 잠깐 시간을 내 귀국한 사람이다. "이번 주에 서울에 가는데 주말에만 시간이 되니 요즘 연극 좀 보러 다닌다는 네가 추천을 좀 해달라."라고 하면 마음 한편 고마우면서도 정말 난감해진다. 연극은 그렇게 그날 골라서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대학로 오픈런 공연 말고는 말이죠. 어제 '공연배서비스 간다'의 20주년 기념 작품 《템플》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연극을 추천해 줬으면 진짜 칭찬받았을 텐데.

윤성원 배우의 팬인 아내는 그의 이름과 함께 박희정 배우 캐스팅을 선택했다(우리 부부의 연극 관람은 아내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다. 나는 대부분 좀비처럼 아내를 따라갈 뿐이다). 박희정 배우를 처음 인식한 건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에서 니나 역을 맡았을 때다. 여러 가지 개인적 호불호가 있었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희정의 연기만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번에 엄청난 호평을 받은 배우 겸 가수 김세정을 제치고 그녀의 연기를 택한 이유다.


시작 전 내 뒷줄 객석에서 스냅백을 쓴 한 남자 관객이 일행들에게 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템플이 궁전이 아니고 주인공 여자애 이름이에요." "아하. 그렇구나." 남자의 말대로 제목이 '템플'인 이유는 이 연극의 주인공이 템플이기 때문인데 이 여자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 예전 사람이므로 당시 의사들은 그녀가 평생 수용소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악담을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평생 그녀에게 빛이 되어 준 칼락 선생님도 있었다(이 칼락 선생 역을 윤성원 배우가 맡았다).

연극은 자폐아를 다룬 내용답지 않게(?) 아주 유쾌하고 수다스럽고 역동적이다. 초반 대사에 "이 연극은 관객 여러분께 잘 전달하기 위해 이상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라는 선언이 나오는데 이건 우리가 아는 우영우 변호사의 드라마 제목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였던 것과 괘를 같이 한다. 이 연극은 모든 대사가 아주 빠르고 힘찬 데다가 아크로바틱 한 배우들의 동작이 그 대사의 맛을 더 살려준다. 알고 보니 '신체 연극'이라는 게 배우들의 신체 움직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인물의 심리나 상태, 감정을 구현하는 장르였다. 이는 템플의 정체성에 너무 잘 어울린다. 그녀가 처음 청소년 캠프에 갔다가 '젖탱이'라는 단어에 꽂혀 하루 종일 젖탱이 젖탱이를 외치고 다닌 것은 특별히 음란해서가 아니라 하나에 집중하면 뭐든 가리지 않고 과도하게 몰입하는 자폐 스펙트럼의 특징을 잘 살린 에피소드다. 게다가 요도염까지 걸려 자신의 성기를 긁고 다녔으니 남자애들이 얼마나 기겁을 했겠나. 게다가 그녀는 모든 걸 그림으로 생각하는 천재였다. 주변 사람들이 끝까지 그걸 몰랐으면 그녀의 인생은 불행했을 것이다.


연극이 밝고 통쾌한 이유는 그런 템플이 결국 자신의 장점을 살려 끝내 동물학 박사로 성공하기 때문이다. 고모 농장에 놀러 가서 소를 진정시키는 '압박기계'안으로 들어가 본 그녀는 거기서 의외의 편안함을 느끼고 그걸 아이디어로 자폐아들을 위한 포옹 기계를 만든다. 자폐아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발명을 한 것이다. 이런 발명 말고도 그녀는 동물학자로도 탁월해서 미국에서 사용되는 가축 시설의 3분의 1이 그녀의 설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들이 박희정, 윤성원 말고도 박선혜, 마현진, 최미령, 정선기, 이종혁, 문경초 등 모든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격한 감동을 안긴다.


리뷰를 쓰려고 새벽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첫날 유지태 배우가 100석을 예매해 팬들과 함께 관람했다는 기사가 떴다. 아내는 우리와 친하게 지내는 임세미 배우도 이 연극을 세 번이나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체크무늬 남방, 그리고 짧은 청바지를 입은 템플의 당돌하고 귀여운 모습이 떠오른다. 민준호 연출과 심새인 안무가가 이런 멋진 공연을 만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오다 로비에서 김여진 배우를 비롯한 많은 연극인과 탤런트들을 보았다. 남자 관객들도 눈이 벌건 사람들이 많았다. 감동의 눈물이다. 또 자랑을 실컷 했다. 왜 너만 이렇게 재미있는 연극을 보러 다니냐고 욕하지는 마시라. 내년 2월 18일까지 대학로의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한다. 인터파크 예매창에 가서 '템플'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얼른 예약을 하시라. 이런 작품은 다들 귀신 같이 알고 바로 매진을 시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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