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첸 광고를 닮은 연극

극단 백수광부의 《집집:하우스소나타》

by 편성준

강남에 가면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아직도 서울엔 작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다. 연극 '집집'은 좁고 낡은 임대 아파트의 오래된 싱크대 밑에서 입주자 연미진이 현금 280만 원 뭉치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돈은 누가 여기에 숨겨둔 것이며 여기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동아연극상 희곡상에 빛나는 이 연극은 극작가 한현주가 2년 전에 써서 상연했던 작품을 올 연말에 다시 선돌극장에 올린 것이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경에 이 아파트엔 박정금이 살았고 그에겐 일 하다 다친 이혼남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십여 년 후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못하고 혼인신고만 한 실직자 연미진이 들어온다. 그의 남자친구이자 서류상 남편인 이성근은 밤새 근무를 하는 직장에 다니느라 낮에 들어와 잠만 잔다. 그런데 주문한 침대 프레임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맨바닥에서 자야 한다. 베개도 없이 방바닥에 꼬부러져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 밖에도 연극엔 아파트 관리인과 동네 주민들, 교회 집사, 부동산 TV 출연자 등 많은 인물이 나온다.

연극은 일정한 자격이 되어야 아파트 입주 자격이 주어지고 소득 수준에 따라 역차별도 일어나는 서민경제의 사각지대(死角地帶)를 잘 비추고 있다. 하여 '너에게 집이란 무엇이니?'라고 묻는 이 연극은 어쩌면 KCC 스위첸 광고를 길게 늘여 놓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연극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박정금 역의 황정민과 집사 역할을 맡은 박소연 배우다. 특히 찬송가와 기도를 힘차게 부르고 외치며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기엔 나쁜 짓을 거의 하지 않지만)을 소화한 박소연의 연기는 반복되는 찬송가와 돈봉투 등 주제의식이 너무 드러나는 극의 흐름을 유연하게 바꿔준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 밖에 서있는 이성열 연출과 한현주 작가를 한꺼번에 보았다. 눈이 너무 많이 와 길이 미끄러운데도 기꺼이 연극을 보려 와준 많은 관객들에게 진정 고마워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다시 따뜻해졌다.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박소연 배우가 나타나 아내의 손을 잡고 반가워 팔짝팔짝 뛰었다. 우리는 요란뻑쩍찌근에게 셀카를 찍고 헤어졌다.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날인 오늘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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