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산수유의《숲》
와즈디 무아와드라는 이름도 어려운 작가가 쓴 연극이었고 국내 초연이라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 치고는 출연 배우들 숫자도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회 전석 매진' 문자가 뜬 것은 《12인의 성난 사람들》 《누란누란》 등을 연출한 극단 산수유 류주현 대표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까(1인 1매 규정 때문에 아내와 나는 따로 예매를 해야 했다). '보불전쟁으로 시작된 어느 집안의 150년 간 8대 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시놉시스를 읽고는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 등을 떠올리며 겁부터 냈다. 하지만 '보불전쟁'이 뭔지 몰라 인터넷으로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무식했던 우리 커플은 이내 장엄하고 기괴하며 심지어 '막장드라마'스럽기까지 한 이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연극은 죽음을 앞둔 엄마의 뇌 속에서 발견된 뼛조각에 의문을 품은 열여섯 살 소녀 루와 150년 전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을 모티브로 숲에 들어가 동물원을 만들고 운영하며 살게 된 어느 집안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진행되는데 여기엔 가부장제와 혼외정사, 근친상간, 가스라이팅, 강간, 자살 등 온갖 악덕과 비극의 요소들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신기한 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 세진다는 것이었다. 뇌 속의 뼈, 부서진 턱뼈와 함께 누군가의 등에 새겨진 글귀 '너를 절대 버려두지 않을 거야' 같은 글귀의 아이디어도 절묘했다. 연극을 보면서 이는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소설 『모든 것이 밝혀졌다』를 읽을 때의 충격과 맞먹는다고 생각했다. 레바논 출신의 퀘벡 연극인 와즈디 무아아드의 야심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증거다. 이 연극은 2006년 무대에 처음 올라갔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럽지역과 영미권 국가에서 크게 흥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하는 온갖 에피소드에 노출 장면도 즐비하지만 마지막 여성들의 목숨을 건 뜨거운 연대가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특히 쌍욕을 입에 달고 살던 루가 아빠와 고생물학자 두글라스 뒤퐁텔과 각각 이루는 따뜻한 화해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선사한다. 인터미션 포함 총 200분의 러닝타임이 지나가자 좁고 딱딱한 극장 좌석 탓에 여기저기서 "아이구, 허리야" 하는 엄살이 들려왔으나 일어서는 관객들의 표정은 뿌듯하기만 했다. 2023년 12월 31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한다. 전회 전석 매진이라고 슬퍼하지 말자. 기다리면 다시 한다. 나도 기다린다. 이런 연극은 다시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더 큰 무대에서 더 정제된 연기로 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