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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13. 2024

광화문에서 영화만 보고 헤어진 사람들

유진목의 극장전 :《괴물》

 

'영화를 같이 보는 모임이긴 한데 적극적으로 영화에 대해 얘기하거나 친목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영화 예매를 하고 극장 앞에 있는 찻집에서 만나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각자 가져온 책을 읽다가 시간이 되면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고 헤어진다.'


어제 유진목 시인이 제안해서 번개처럼 열린 '유진목의 극장전' 개요다.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었다. 저녁 7시 30분쯤 씨네큐브 광화문 1층에 있는 폴바셋으로 가서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가져간 책을 읽고 있는데 저쪽 테이블에 유진목 시인이 와서 모르는 분 두 명과 함께 앉아 있었다. 함께 영화를 보자고 하긴 했는데 댓글을 단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오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덟 명 정도가 모였다.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부산의 겨울 날씨와 서울의 겨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뒤늦게 한 분이 와서 다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또 다른 분이 와서 이젠 자기소개하지 말자고 합의를 하고 열 명이 모여 로비에서 잠깐 날씨와 담배 얘기를 하다가 영화를 보러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나는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피했는데 그래도 '누가 괴물인가?'라는 태그라인에 휘말려 어쨌든 괴물을 찾는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가 괴물이거나 학교가, 선생이 괴물이거나 하겠지 생각했던 것 간다. 너무 '라쇼몽' 같은 걸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깐느에서 극본상을 받은 영화답게 생각할 것들이 여러 층을 이루고 있었고 구성과 편집, 연기도 진짜 뛰어났다. 안도 사쿠라야 워낙 잘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또 왜 이렇게 연기를 잘해. 바보처럼 괴물 찾기에 연연하느라 많은 것을 놓친 나는 극장 밖으로 나와 유진목 시인과 다른 분들을 얼굴을 보고 "영화가 생각보다 어렵던데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벌써 10시 40분이었으므로 헤어져야 했다. 아내와 나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헤어지겠다는 시인 일당을 뒤로한 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 안에서 아내와 영화에 대한 토론을 했다. 아내가 찬찬히 설명을 해줘서 많은 의문이 풀렸고, 술을 한 잔 하고 싶어 동네 단골 '본점'에 갔지만 문이 닫혀 있길래 그냥 집으로 와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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