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장을 처음 맡았던 사람의 트레바리 후기
어제인 토요일 아침엔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에서 '문학의 쓸모' 네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유진목 시인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읽고 독후감을 나누었죠. 힘들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베트남 하노이로 날아가는 유진목 시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더니 어떤 분은 류시와 시인이 쓴 '퀘렌시아'가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그의 글과 사진에서 이상한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고 답했습니다. 책을 선정한 사람으로서 뿌듯하더군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회사에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오신 분이 둘이나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전인데도 말이죠. 회사는 참 나쁩니다. 강남 아지트에서만 활동하다 놀러 오신 분은 '문학의 쓸모'라는 제목에 끌려 들어왔는데 난상토론을 벌이는 스타트업 멤버들과 달리 이곳 멤버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조심조심 대화하는 게 인상적이라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파트너 박지현 님은 "우리 멤버들은 서로의 말을 가로막지 않지만 막상 시키면 다들 말씀을 좔좔하시는 게 특징"이라며 웃었습니다.
첫날은 제 책을 읽었고 요죠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리고 유진목의 책까지 읽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얘기하는 것 말고도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을까 해서 '10분 글쓰기' 코너를 마련했는데요, 첫날 자신이 쓴 글을 읽다가 눈물을 터뜨린 분도 있었습니다. 놀랍고 고마
운 경험이었습니다. 매번 짧은 글쓰기 미니 강연도 했는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다들 글쓰기 욕망을 숨기고 살던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시공간이라서 토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습니다.
『슬픔을 아는 사람』엔 유진목 시인이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쓰고 가운데를 줄로 그어버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0분 글쓰기로 '나는 이럼 사람'이라는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서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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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만년필에 잉크를 넣은 사람.
잉크를 넣은 김에 뭔가 글을 쓴 사람.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대해 얘기하고
글쓰기를 권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월요일엔 유난히 사는 게 힘들어도
월요일만 지나가면 그런대로
살 만하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
카피라이터로 살 때보다
작가로 살 때가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저께 아침 여덟 시 오십 분에
네 번째 책 초고를 출판사에 보낸 사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
안 읽은 책이 너무 많고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사람.
그래도 오늘 아침 유진목 시인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어
다행이다 생각하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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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은 제가 쓴 글을 읽는 걸 듣더니 "이렇게 길게 쓰는 거였어요?'라고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제일 좋았던 건 '10분 글쓰기'와 그 글에 대한 저의 리뷰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 책을 두 권이나 가져오셔서 사인을 해드렸습니다. 남자친구에게도 책을 보여 줬더니 너무 좋아한다고 해서 저는 속 없이 기뻐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헤어졌습니다. 저는 다음 달인 3월 2일부터 '문학의 쓸모' 두 번째 클럽장을 맡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고전소설 네 권을 읽을 생각입니다. 관심 있는 분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주변 분들에게도 알려 주시고요. 곧 정식으로 광고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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