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 :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넷플릭스를 켰다가' We are the world'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앉은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이 곡은 당시에도 정말 세계적인 화제였는데 이렇게 며칠 사이에 작곡부터 섭외, 녹음이 다 이루어진 일이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마틸다'로 유명한 해리 베라폰테가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어린아이들을 살리자는 아이디어를 밥 겔도프의 콘서트에서 얻었고 이걸 라이오넬 리치에게 말했다. 대장은 퀸시 존스가 좋을 것 같다고 했고 퀸시도 응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오 케스트레이터였으니까. 일단 노래를 만들어야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뮤지션들도 모아야 하는데 기회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가 열리는 날 저녁 딱 하루밖에 없었다. 그날 시상식 사회를 라이오넬 리치가 보는데 행사가 끝나고 가수들을 납치하듯이 스튜디오로 데려가 녹음을 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 다른 데서 녹음을 하고 있는 프린스 같은 가수는 올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스티비 원더가 온다고 했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콘서트가 끝나고 힘들어서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미정이라고 했다. 레이 찰스가 온다고 했고 디온 워윅이나 신디 로퍼도 동의했다. 슈퍼스타들이 40명 이상 모이기로 했으니 장소도 문제였다. 이들이 한꺼번에 들어가 녹음을 할 스튜디오가 필요했다. 요즘처럼 따로따로 녹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만약 스튜디오가 어딘지 미리 알려지면 팬들이 몰려와서 녹음이고 뭐고 다 끝장이었다.
가수들은 온다고 했고 스튜디오도 잡았는데 정작 부를 노래를 못 만들었다. 라이오넬 리치는 미칠 것 같았다. 마이클 잭슨과 의논을 했다. 시간이 없어, 마이클. 전화로는 답답해서 무조건 마이클 잭슨의 집으로 갔다. 처음 가 본 마이클 잭슨의 집이었다. 둘이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마이클은 허밍한 멜로디를 녹음하고 계속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작곡을 해갔다. 천재만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녹음을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구관조와 개가 싸우는 소리라고 했다. 구관조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개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맨날 싸운다는 것이었다. 2층에서 작곡을 하고 있는 뱀이 나왔다. 라이오넬 리치는 혼비백산 소리를 질렀는데 마이틀은 태연했다. 오, 너 거기 있었구나. 어디 갔었니, 뱀아.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We are the world'라는 가사는 마이클이 만든 것 같다고 했다. 40년 전의 일이니 잘 기억이 안 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누가 만들면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의 목소리는 정말 카랑카랑했다. 곡을 완성하고 데모 테이프를 만들고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어 일일이 아티스트와 매니저들에게 보냈다. 녹음하러 오기 전 멜로디를 좀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이메일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가 열리는 날 저녁 라이오넬 리치는 무대 위를 펄펄 날아다니며 사회를 봤다. 가수들을 일일이 다 소개하고 본인의 쇼도 했다. 상을 여섯 개나 받았다. 그는 행사가 끝나고 가수들에게 집에 그냥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다들 스튜디오로 곧장 가라고 했다. 우리나라 문단 속담에 '돼지 열 마리를 몰고 제주도로 가는 것보다 작가 열 명을 데리고 제주도 가는 게 더 힘든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그 정도가 아니라 세계적인 스타 40명을 한 스튜디오에 몰아넣고 녹음을 하는 프로젝트이니 정말 미친 짓 중의 미친 짓이었다. 당장 말 안 듣고 제멋대로 구는 예술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심하던 퀸시 존스는 스튜디오 앞에 이렇게 써 붙였다. '자존심은 문밖에 두고 와라(Check your ego at the door!).' 아티스트들은 그걸 읽고 들어오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건 말도 안 되는 개또라이들의 회합이야.
스티브 페리, 휴이 루이스 같은 젊은 뮤지션들 앞에 밥 딜런이 나타나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비행기를 타고 왔다. 디온 워윅은 윌리 넬슨이 자신의 듀엣 파트너가 된 게 재밌다고 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얘기 같았는데 퀸시 존스가 정한 것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녹음 직전 퀸시 존스가 밥 겔도프를 소개했고 그가 앞으로 나와 아프리카에서 보고 온 어린이들 얘기를 했다. "이 조그맣고 구멍 뚫린 플라스틱 하나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티스트들이 나서서 굶어 죽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를 깨고 싶진 않지만 시작 전에 이런 취지를 말씀드리는 게 여기 모인 사람들을 위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런데 다이애나 로스가 어떤 뮤지션에게 싸인을 부탁하자 그걸 신호로 모든 스타들이 서로의 악보에 사인을 하고 받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새벽 한 시가 넘어 녹음이 시작되었고 그 많은 별들이 대장 퀸시 존스의 입만 바라보았다. 가수들은 자기 이름이 매직으로 찍찍 쓰인 테이프 앞에 섰다. 유닛송을 먼저 녹음하고 이어 각 파트 녹음이 있었다. 휴이 루이스와 신디 로퍼, 디온 워윅 파트에서 갑자기 화음을 넣는 것도 괜찮겠다는 의견이 나와 즉석에서 삼도 화음을 만들어 녹음했다. 애드립으로 단박에 화음을 만들어 녹음하는 그들의 천재성을 지켜보고 있자니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아내를 쳐다보니 그녀도 울고 있었다.
녹음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안 하면 날이 새도록 마치지 못할 게 뻔했다. 술에 취했던 알 재루의 '약간의 오버' 말고는 큰 사고가 없었다. 스티브 페리를 비롯한 가수들은 모두 자신의 역량을 200%를 발휘했다. 신디 로퍼 부분에서 이상한 웃음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녹음이 중단되었다. 신디는 화가 나서 "나는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내가 노래 부를 때 제발 웃지 말아 주세요."라고 했다. 그때 누가 "신디, 팔찌를 정말 많이 찼네요."라고 말했다. 머리를 요란하게 염색하고 목걸이와 팔찌를 많이 찬 그녀가 문제였다. 신디가 목걸이를 급하게 벗자 누가 "그러다 옷까지 다 벗겠어요."라고 농담을 했다. 목걸이와 팔찌를 벗자 찰랑거리는 웃음소리가 사라졌고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스티비 원더가 레이 찰스 팔을 붙잡고 화장실 가는 길을 안내하겠다고 농담을 하자 다들 깔깔 웃었다. 둘 다 맹인이기 때문이었다. 이 장면을 모두 찍은 카메라맨은 "돈을 받으면서 이런 놀라운 걸 찍는다는 행운이 믿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목이 좋지 못한 상태였고 시간은 새벽 다섯 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들은 퀸시 존스는 "오케이, 부르스. 콘서트장에서 치어리더들에게 소리 지르듯 노래해 주세요. 부루스 스프링스틴 특유의 목소리가 완성되자 동료들이 박수로 격려했다. 밥 딜런도 헤매고 있었다. 세상에.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라던 밥딜런이 헤매다니! 그런데 스티비 원더는 모창의 달인이기도 했다. 밥 딜런이 헤매자 스티비는 그를 피아노 앞에 불러 밥 딜런 풍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밥 딜런이 그걸 듣더니 단박에 얼굴이 환해졌다. 그가 자기 스터일로 녹음을 무사히 마친 건 스티비 원더 덕이었다. 아침 일곱 시가 넘어 녹음이 다 끝나고 이제 집으로 가도 좋다고 했더니 '위 아더 월드' 티셔츠를 입은 다이애나 로스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게 영원히 계속 됐으면 했어요. 그녀가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3개월 후 ' We are the world'가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길만 나서면 이 노래가 들렸다. 그 노래 뒤에 이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는 몰랐다.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단 하룻밤에 만들어진 기적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엔 지금은 고인이 된 뮤지션들의 이름부터 나왔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마저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