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규 주연의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관람기
어제 손상규 배우가 나오는 일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보았다. 일주일 전 김신록 주연으로 한 번 본 연극이지만 손상규 연기도 워낙 좋다고 소문이 나서 아내가 또 예매를 한 것이다. 사실 손상규는 《맥베스》 때 보고 깜짝 놀랐다. 딕션이 너무 좋고 연기도 끝내주는 배우였다. 마음 같아선 김지현과 윤나무 편도 보고 싶지만(네 명의 배우가 각각 다른 날 모노드라마를 한다) 그러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두 편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호사라고 생각한다.
연극을 보면서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괜히 이름이 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김신록 버전이 좀 아기자기한 몈이 있었다면 손상규는 힘이 넘쳤다. 어쨌든 두 사람 다 1시간 40분 동안 쉬지 않고 혼자 무대를 완전히 장악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굳이 개인적인 취향을 밝히자면 나는 김신록처럼 귀여우면서도 움직임이 크고 낭창낭창한 쪽이 더 좋았다. 뭐, 연기는 막상막하지만.
누구가 이루어 놓은 눈부신 성과를 보고 감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운이 좀 좋아서 된 것'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실력은 그저 그런데 재수가 좋아서, 또는 시기를 잘 타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의견이다. 일부분은 동의한다. 성공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운 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실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 운이 다가와도 잡지 못한다. 김신록이나 손상규 같은 사람들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이런 기회를 얻어 펄펄 나는 것이다. 태어난 곳이나 시기는 내가 어쩔 수 없지만 그다음부터는 본인의 노력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너무 한 것 같다. 하지만 진심이다. 운도 실력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 연극이 끝나고 일어나는데 객석에서 웬 미모의 여성이 "혜자 언니!"하고 부르길래 쳐다보니 배우 김재경 씨였다. 연기하는 후배와 같이 보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나 듯이 "재경 씨는 배우라서 그런지 예쁘긴 진짜 예쁘더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