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록 모노드라마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새벽 5시 50분 서핑을 하던 19세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진다. 친구들은 안전벨트를 매서 살았지만 이 친구만 가운데 좌석에 앉는 바람에 차창을 뚫고 나갔다. 이 연극은 뇌사상태 청년의 심장 등 장기들이 적출되어 다른 사람의 몸으로 가기까지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과정을 여러 사람의 입과 동작을 통해 전한다. 사실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사연도 다채롭게 등장해 극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과 등장인물을 김신록 배우 한 사람이 다 소화해 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연극은 일인극이니까.
빈 무대에 데스크 하나만 놓고 그 위에서 서핑도 하고 수술도 하는 김신록의 연기는 자신감 가득이다.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화자 역할을 할 때는 짧고 강력한 억양으로 치고 나가고 죽은 청년 시몽의 부모나 그의 여자친구, 심장 전문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심장을 이식받는 환자 클레르 메잔에 이르기까지 인물이 바뀔 때마다 '변검'처럼 변화무쌍하게 연기한다. 모든 대사가 선명하게 들리는 딕션은 물론 건들거리고 축구 좋아하는 의사부터 정말 '여자여자한' 여자친구 역할까지, 이건 정말 연극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연기이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배우라면 불가능한 미션이다. 공연이 다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연기를 한다고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중얼거렸고 아내도 김신록이 오로지 연기를 위해 유학과 한예종 진학 등 많은 공부를 한 지성파 배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김신록을 확실하게 인식한 건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첫 장면 때였던 것 같은데 그 이전에 이미 김신록은 스타였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파도 소리 등 연극의 사운드 디자인과 동영상 활용도 좋았고 절도 있는 수술 장면의 핀 조명 활용 역시 절묘했다. 100분 연극이라고 했는데 두 시간 가까이했던 것 같다. 아마 김신록 배우의 리듬에 맞추어서 그랬을 것이다. 연극 보기 전 로비에서 국회도서관 임지원 대리님을 우연히 만나 인사를 했다. 나는 임 대리님 초청으로 국회도서관에 가서 글쓰기 강연을 한 인연이 있다. 우리가 다음 주 손상규 배우 편도 예매를 했다고 자랑을 했더니 임 대리님도 솔깃하는 표정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금지된 사진 촬영을 기어이 시도하는 관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뛰어 온 직원에 의해 제지당했다. 되게 열심히 하는 직원이었다. 아내가 예매를 서둘렀는데도 좌석이 너무 뒤라 배우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우리 집 연극 티켓은 모두 아내가 산다. 돈도 아내가 다 낸다). 김신록의 미친 연기에 관객들은 만석으로 화답했다.
프랑스 문단의 총아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대표작이자 여덟 번째 장편소설인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원작이란다(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빌 게이츠가 추천했다고 한다. 부지런히 책을 읽자). 나무위키에서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살수선'으로 불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준말 만들어 내는 거 보면 정말 감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