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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29. 2024

정치인 김대중을 키운 건 박정희였다!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

“무엇이 되어야지,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면

내 인생은 실패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쪽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 김대중의 말은 이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작으로 명필름에서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어제 CGV용산에서 보았고 GV에도 참석했다. 곽명동 기자가 사회를 보았고 민환기 감독과 나레이션을 맡은 배우 장현성이 참석했는데 행사가 즐겁고 재밌었다.

일제강점기 때 작은 섬에서 살다가 목포로 유학을 가게 된 기대와 기쁜 마음을 전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소리로 영화는 시작된다. 김대중은 여기서 목포상고를 나왔고 배를 한 척 사서 시작한 해운업을 통해 성공한 청년 사업가가 된다. 당시 미제 지프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몇 없을 때 그의 차가 목포 시내를 누볐다고 한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예전 자료들과 인터뷰 등으로 진행되는데 자료를 보는 데만 1,700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그 노력과 집념이 대단하다.


청년 사업가로 탄탄대로를 걷던 김대중은 6.25 때 부산에서 보여준  정치인들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고 자신이 직접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다. 정치적 기반이 없던 그는 선거에서 번번이 떨어지다가 겨우 국회의원이 되는데 당선되자마자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한다. 군부는 민정 이양 약속을 저버리고 정권을 거머쥔다. 이때부터 김대중 특유의 논리와 저항의 정치 인생이 시작된다. 웃기는 건 무명인 김대중을 거물로 키워준 사람이 다름 아닌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은 탄탄한 팩트와 논리로 정권의 잘못을 거침없이 공격하는 의원으로 입지를 굳혔고 박정희는 그럴수록 그를 미워했다. 김대중에 국회에서 여당을 궁지로 모는 걸 스피커로 들으며 “왜 그 많은 의원이 김대중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냐?’라고 화를 낼 정도였다. 결국 김대중은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정도로 성장했고 박정희는 ‘김대중은 지역감정의 산물이고 자기 말을 뒤집는 대통령병 환자다’라는 유언비어를 살포함으로써 그를 더욱 중요한 인물로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그를 탄압, 회유하고 정치활동을 금지시킴으로써 마침내 재야의 인사 ‘김대중 선생’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된 김대중은 암살 직전에 복도에서 우연히 친한 국회의원과 마주쳐 즉결 처분을 면하고 배에 실려 수장될 운명이었다가 미국과 일본의 추격 때문에 결국 다시 동교동 자택 뒷마당에 버려지는 일련의 사건은 너무나 영화 같은 사건이었다. 나는 그런 고초를 겪은 김대중이 12.12 쿠데타 군인들에 의해 ‘김대중 내란죄의 수괴’로 몰려 사형을 언도받는 장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두환 일당은 김대중과 인사만 나눈 적이 있던 대학생을 잡아가 고문해 전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 후 간첩과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뒤집어 씌운 것이다.


영화는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87년 9월 광주·목포 방문까지의 일대기를 담았고 2부에나 너머지 이야기를 다루겠다는 자막을 보이며 끝이 났다. 이어진 GV에서 배우 장현성은 이 영화에 내레이션 제의를 받았을 때 너무 출연하고 싶어서 흔쾌히 허락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는 하기 싫은 작품은 거절할 정도는 되었는데 이 작품은 너무 하고 싶더라는 것이다. 그는 나레이션을 하면서 다시 본 김대중 전 대통형이 정말 잘 생겨서 새삼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엄청난 고초와 위협을 겪으면서도 원한을 갖기보다는 대화와 타협과 신념으로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고 ‘하는 의연한 모습에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감옥에서 쓴 그의 옥중 편지들의 가지런한 글씨와 이희호 여사에게 부탁한 책들의 목록에 감동했다. 이것 말고도 영화엔 감동 포인트들이 정말 많다.


곽명동 기자는 사회를 잘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최최의 CEO 출신 대통령인데도 치부에 골몰하지 않고 정치로 뛰어들어 평생을 신념대로 살아 간 그 모습에  감동했다고 털어놓았다.  87학번인 민환기 감독은 총 1,700시간이나 걸리는 자료를 자신이 모두 검토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대신 책을 많이 찾아 읽으며 다큐멘터리 구성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GV라는 게 재미없기 마련인데도 이렇게 많은 관객이 남아 있는 것은 그만큼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대한 공감대가 큰 것 때문일 것이라 말한 장현성이 “우리가 정우성이나 박찬욱도 아닌데.”라고 농담을 하자 곽동명이 “저도 이동진이 아닌데.”라고 받아 웃음을 주었다.  ‘광주는 16년 만에 첫 방문이었다’라는 대사로 영화 1부는 막을 내린다. 기다렸다가 2부를 꼭 보고 싶은 영화다. 아직 안 보신 분은 얼른 예매하시기 바란다. 아내는 ‘길 위에 김대중 -> 서울의 봄 -> 노무현입니다 -> 1987’ 순으로 영화를 보면 우리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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