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기 워크숍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들
어제가 책 쓰기 워크숍 15기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겨울에 눈 쌓인 골목길을 지나 우리 집에 오신 참가자들은 5.5개월 동안 각자 쓰고 싶은 책을 기획하고 상상하고 열심히 원고를 썼다. 다들 생업이 있고 사정이 있어서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채우진 못했고 교통사고를 당해 오지 못하고 치료 중인 분도 계셨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성과가 있고 앞으로 써야 할 책의 방향성이 확실해져서 뿌듯한 밤이었다.
특히 한 남성 참가자의 발전과 성과는 눈부신 것이었다. 집안에 닥친 불행으로 힘들어하던 그분은 매우 소극적인 성격으로 직장에서도 연애에서도, 신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까지 얻어 괴로워하던 독신남성이다. 글도 잘 쓰지 못했다. 맞춤법은 엉망이었고 문장도 독백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열의'가 있었다. 쓰고자 하는 의지와 열의가 눈빛에 어른거렸다.
우리는 그를 응원했다. 잘 쓰고 계십니다. 일단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내세요.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신들린 듯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괴로웠던 일도 슬프고 초라했던 일도 모두 A4지 70장의 글이 되어 이 주일마다 내 눈앞에 펼쳐졌다. 워크숍 멤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반복되는 에피소드나 적절치 못한 표현, 너무 심한 자기부정 등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쓴다는 점에서 희망적이었다. 심지어 은근한 유머감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워크숍 마지막 날인 어제 소행성 책 쓰기 워크숍의 기획자인 윤혜자는 그 남성 참가자의 원고가 이번 워크숍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일갈한 뒤 탈고를 하면 출판사를 적극적으로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참가자들은 진심 어린 박수를 쳤고 그는 조용히 기뻐했다. 5개월 전부터 지금까지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 않은 그였지만 기뻐하는 미소와 눈빛 만은 숨길 수가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딘가에 마음을 쓴다는 것이다. 내 생각을 읽어줄 사람들을 위해 애를 쓴다는 것이다. 시간을 쓴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고 생각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위해 내가 쓰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책 쓰기 워크숍을 하면서, 글쓰기 선생을 하면서 이런 것들을 배운다. 궁리하고 돕고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린다. 소행성 책 쓰기 워크숍 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