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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05. 2024

우리는 모두 '사망 예정자'라는 그의 생각

김호 김호 작가의 전시회 Obituary>  

"나는 언제 죽으면 좋을까?"

불경스럽고 이상한 질문이다.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거나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요즘 목공을 열심히 하고 있는 김호 대표는 '비록 사망일은 정할 수 없지만 장례식 날짜는 미리 정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슬픔의 방문>의 저자 장일호 기자도 비슷한 생각을 책에서 밝혔는데 김호 작가는 그걸 구체적 공간에서 실현해 본 것이다. 죽고 나면 자신은 참석할 수도 없는 장례식을 하느니 살아 있을 때 조문객을 맞겠다는 아이디어가 출발이다. 1인기업 더애이치랩에서 리더십과 위기관리 커뮤니케션 워크숍을 하고 직장생활에 대한 책, 거절하는 법에 대한 책 등을 썼고 정재승 교수와 사과하는 법에 대한 책도 냈던 그 김호 대표 맞다.


금요일 오후에 대학로의 작은 화랑 공간아래(#gongganare)에서 열리는 김호 작가의 전시회 <Obituary>에 다녀왔다. 컨설팅과 집필 이외에도 목공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피아노를 8년이나 배웠다는 사실은 몰랐다. 전시장엔 그가 외국에서 구입한 오래된 못과 목재, 그리고 좋아하는 샴페인병을 그린 작품들이 있고 김호 본인이 직접 피아노로 'Danny Boy'를 연주하는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뉴욕에 있는 연주자와 오버더빙 형식으로 만든 음악이라 더블베이스 연주자 모습이 따로 나오며 두 음악이 협연되는 것도 간단하지만 새로웠다.

장례식답게 김호에게 남기는 글을 길고 좁은 종이에 쓰는 코너가 있길래 나도 가서 한 줄 썼다. '김호, 이름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사람.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사람'이라고 쓴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전시회 도록이 너무 만듦새가 좋아서 다른 분들에게 양보하고 안 가져오려고 했으나 김은령·김호 두 분이 하도 권하는 바람에 나도 한 권 소장하게 되었다. 아내인 김은령 부사장이 월간지 <럭셔리> 편집장을 오래도록 역임했으니 책을 오죽 잘 만들었겠는가.


요즘은 좀처럼 생산되지 않는 수제 못과 나무판을 사용한 작품들은 김호가 태생적으로 철학자이자 아티스트라는 걸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우리 삶의 남은 기간을 헤아려보게 하는 힘이 있다. 나는 김호 작가가 장례식장에서 나왔으면 하고 고른 음악 넘버들 중 'We Are All Alone' 가사가 쓰인 액자를 보며 "리타 쿨리지보다는 원곡자인 보즈 스켁스 버전이 더 낫지요."라고 아는 척을 하다가 아내에게 놀림을 받았다. 대체로 나는 입이 방정이다.  3월 10일까지 대학로에서 전시되니 들러 보시기 바란다. 금요일 저녁에 써야 했는데 번잡스러운 일이 많아서 못 쓰고 있다가 이제야 잠깐 쓴다.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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