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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02. 2024

페친이 뭐라고 철원까지 달려가나?

그동안 아는 사람들과는 너무 달랐던 기독교인들 만난 이야기

어제는 철원에 있는 '국경선평화학교'라는 곳에 다녀왔다. 아내가 전옥희 선생을 통해 우리 집에 있는 책 중 넘치는 것들을 이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며칠 전부터 골라서  툇마루에 놓았던 책 190권 정도를 박스에 넣고 노끈으로 묶어 캐스퍼에 싣고 떠났다. 카셰어링 서비스 쏘카에서 열두 시간 빌렸다.

'국경선평화학교'라는 제목만 들어서는 어떤 곳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왜 휴전선이라 안 하고 '국경선'이 라고 부르지? 국경선이라니 통일을 연구하나? '평화'라면 히피인가, 아니면 종교단체인가? 학교라는데 뭘 가르치길래?)  막상 가 보니 기독교인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내 주변이나 압구정동, 광화문 등에서 마주치던 기독교인들과는 굉장히 달랐다. 이렇게 자유롭고 공부 많이 하는, 그러면서도 권위적이거나 거룩한 척하지 않는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마침 우리가 간 어제는 3.1절이었고 '2024 [DMZ평화특강]'이 열리는 첫째 날이기도 했다. 오후 2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개교 11주년 기념 모임이 시작되었고(자기소개 시간이길래 "안녕하세요? 편성준이라고 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고요, 책을 기증하러 왔는데 이렇게 거룩한 분위기인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3시부터 '피스메이커' 안재웅 박사의 강연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1940년생, 우리 나이로 85세인 안 선생은 구한말부터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를 자신의 집안 이야기와 섞어서 들려주었는데 그 팔팔한 기백과 옳은 방향성,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력의 비상함이 놀라웠다. 사람들 이름도 이상재, 윤치호, 전태일, 조영래, 안병욱, 언더우드, 심대균, 이창복(독일 여성 작가 이름을 까먹었다. 무슨 슈타인이었는데) 등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나왔고 한국 YMCA 학생회부터 87 항쟁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이야기에 '민주화'가 붙어 있어서 신선하고도 젊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그동안 민주주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했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 기회였고 특히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때 병원으로 달려갔던 사람들이 "우리는 기독자로서 이 사람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사람은 현대의 예수와 같다."라고 해석하며 197년부터 1980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기념식을 했던 대목은 시대정신을 읽는 지식인들의 실천적 면모를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연 분위기였다. 도서관엔 뛰어노는 아이가 둘 있어서 강연에 방해가 되기도 했는데 그 누구도 조용히 하라 하거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민주와 배려가 생활인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야기 마당 시작 전에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인 정지석 선생이 나와 '지혜의 향연'은 사랑방처럼 편안하게 진행된다고 설명을 해주셨는데 역시 그 말 그대로였다. 강연 도중 질문과 의견이 있었고 끝나고 나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떤 장로님이 "<길 위에 김대중>이라는 다큐에도 '호헌철폐 운동본부' 등 기독교인들의 활약했던 일들이 생략되어 있는 점, 더 나아가 지금은 기독교에서 그런 논점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는 점, 그래서 결국 젊은이들은 기독교, 라고 하면 전광훈 목사만 떠올리는 현실을 개탄했다. 정지석 선생이 학교의 취지 등을 얘기하며 "우리나라는 매년 분단 비용이 60조 원"이라고 한 얘기도 기억할 만한 언급이었다.


1부가 끝나고 식사를 하는 시간에 누가 정지석·전옥희 선생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아내가 "그냥 페이스북 친구"라며 웃었다. 아마 대답을 하면서도 '페이스북 친구가 뭐라고 철원까지 달려 왔을까'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너무나 많은 것을 얻어가는 자리였다. 철원에서 십수 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1기 졸업생 김융희 선생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요즘 우리가 먹는 치아바타를 만드는 평화농장의 부부 대표님들도 만났는데 여성 대표님이 아내가 윤혜자라는 걸 알고 깜짝 놀라며(이니 그 윤혜자 선생이 이 윤혜자 선생이었어요?!) 반가워해 주셨다. 정지석 선생이 우리에게 "저녁 7시 2부 강연 전 사람들에게 '누구나 책을 쓸 수 있고 또 써야 한다는 얘기를 해달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셨다. 나는 내가 광고회사를 다니다 그만둘 때의 심정과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제주에 혼자 내려가 외롭게 첫 책의 원고를 쓰던 이야기, 요즘 글쓰기 강연과 책 쓰기 워크숍을 하며 사는 이야기, 책을 쓰면 달라지는 인생 전반에 대해 말씀드렸고, 이어 아내 윤혜자는 책 쓰기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자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팁 등을 쉽고 빠르게 전했다. 렌터카 반납 시간인 밤 열 시에 맞추어 일어나야 했기에 둘 다 말이 빨랐고 중구난방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다음엔 더 여유 있게 와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드리기로 약속했다.

서울서 철원까지 100킬로미터다.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멀어서도 안 가긴 했지만 그동안은 갈 일이 없어서 못 갔다. 그런데 거기서 이렇게 중요하고 멋진, 그러나 비장하지는 않은 국경선평화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철원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장소성'이라고 대답하겠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분단과 철원에서 생각하는 평화는 참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썩 괜찮은 기독교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하루였다. 다음에 또 가야지. 이제 철원에 친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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