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승의 《정부가 없다》
이 책은 다소 개인적이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정 넘어 재난 경보 메시지가 뜬 날, 즉 10.29 이태원 참사 당일에 늦는다고 미리 예고를 했던 둘째 아이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걱정이 되었던 정혜승 부부는 이태원 골목에도 가끔 놀러 가는 둘째가 무사하기 만을 바라며 무작정 이태원 쪽으로 향했다. 녹사평역 부근 경찰과 구급차들을 보면서 그들의 머릿속은 이미 지옥이었다. 어떡하지? 아닐 거야. 절대 그럴 리 없어. 그때 남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둘째아들의 전화였다. 발신자를 확인한 남편은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정혜승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집으로 돌아온 정혜승은 새벽까지 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옥에서 벗어난 기쁨보다 지옥을 경험하게 될 다른 이들 생각에 다시 겁에 질렸다. '내 새끼'만 무사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태원이든 어디든 누구랑 가서 무슨 짓을 하고 놀았든 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정혜승 작가의 《정부가 없다》는 10.29 이태원 참사를 중심으로 비상사태와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 현 정부가 보여주었던 대응과 소통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빠르고, 신속하고 핵심을 정확히 찌르는 문장들은 정혜승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10월의 마지막 주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 모였던 청년 159명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정부는 사고 전은 물론 사고 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구속되거나 물러난 지도층 인사도 전혀 없었다. 그때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역시 그렇다. 다들 두 손 붙잡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부작위'라는 말이 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사고가 날 위험이 있으면 미리 신경을 써서 예방책을 만들어야 하고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수반들은 그러라고 뽑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사고 후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참사를 '사고'로 바꾸고 희생자를 '사망자'라는 단어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근조'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 검은 리본을 매라고 지시하는 일이었다. 왜 이런 정신 상태가 되었을까. 정혜승은 엘리베이터를 혼자 탔다가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항상 누가 대신 눌러 주었으니까) 한 정치인의 에피소드를 예로 들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가, 로 확장한다. 그의 관찰에 의하면 마블 히어로 스파이더맨도 알고 있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명제는 우리나라 정치인과 위정자들에겐 딴 나라 얘기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벌어진 특수한 상황이 있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나비효과다. 대통령 관저가 갑자기 용산으로 갔다. 이전부터 대통령을 모셨던 종로경찰서는 경험이 많지만 새로운 일을 맡은 용산경찰서는 모든 게 당황스럽고 긴장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처벌에 능한 검찰 출신들이다. 모든 주파수가 대통령에게 향하다 보니 다른 게 소홀해졌다. 국민이 아닌 대통령만 지킨다는 불만이 들려왔지만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참사가 벌어지자 다들 발뺌하기에만 급급했다. 정혜승은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용산소방서에 특별히 일을 못하는 이들만 모였을까?"라고 반문하고 그럴 리가 없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참사가 벌어지면 진상 규명,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신속히 마련해야 하고 그런 과정 자체가 유가족과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치유의 역할을 한다고 믿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한 일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지우고 피해자들끼리의 연대를 방해하고(행안부가 유족들끼리의 연락처 공유를 금지시킨 일은 용혜인 의원이 국회에서 밝혀냈다) 심지어 희생자들을 상대로 '마약 검사'를 했다. 희생양 찾기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의 생사에 몰두하던 것과 똑같은 행태다.
2차 가해도 일어났다. '언제부터 남의 나라 축제에 그렇게 놀러 다녔냐', '보상금 받을 텐데, 그러면 된 거 아니냐', '심보를 그렇게 쓰니까 자식이 사고를 당했지' 같은 막말이 횡횡하고 '시체팔이' 같은 극악무도한 단어가 등장했다. 언론은 차라리 무심한 쪽에 가까웠다. '위패 없는 분향소'에 대한 지적은 없었고 '변질된 핼러윈' 같은 주변 쟁점에만 골몰했으며 보수언론은 검찰정권과 죽이 맞아 유족들을 '빨갱이'로 몰아기에 이르렀다. 이러니 정혜승은 현실에서 얻지 못한 위로를 김탁환의 소설 『목격자들』 에서 얻어야 했다. 수백 년 전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지극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조선시대를 다룬 이야기에서 얻었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0.29 참사 직후 날마다 애도를 표했다. 절에도 가고 교회에도 성당에도 갔다. 그런데 국정 책임자로서 사과는 없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만나지 않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도대체 이게 나라인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 공감능력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다. 정혜승은 기존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소통 대신 시민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디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의 적극적 활용을 주장한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시민들의 신뢰를 얻고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정부가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와 우려를 반영하는 더 포괄적이고 참여적인 정책 결정 과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를 위해 시민 참여 플랫폼의 개발, 공공 데이터의 개방,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 향상을 제안한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이 책을 들고 가는 게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책의 중간 정도를 읽으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조금 놀랐다. 정혜승이 SNS에 쓰는 글들은 워낙 많은 정보와 빠른 속도 때문인지 다소 난삽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차갑고 신중했다. '정부가 없다'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노를 안으로 삭이고 '공감능력이 없다'라는 원인 분석을 짜임새 있는 구성과 이성적인 문장으로 해내고 있었다.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원고를 썼을 정혜승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며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작가, 이런 책들 덕분에 우리는 숨을 쉬며 살아간다. 4.10 총선 전에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