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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8. 2024

해변을 맨발로 걷다

대처해수욕장 슈퍼어싱 해변맨발걷기

토요일 아침 혼자 천변으로 산책을 나가 난데없이 '피카소'라는 이름이 붙은 모텔'을 구경하다가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밥까지 먹은 뒤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슈퍼어싱 해변맨발걷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맨발로 해변을 걷는다는 행사 컨셉이 단순하면서도 신선해서 한 번 참가해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대천해수욕장까지 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주최 측이 나눠주는 신발주머니와 물, 그리고 보령의 특산품인 머드비누를 받아 들고 즐거워했다. 나는 물품보관소에 나의 가방과 아내의 백을 맡기고 신발주머니만 등에 매었다. 산책을 하는 시간이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싶었다.  


여성 아나운서가 나와 사회를 보았고 간단한 몸 풀기를 한 뒤 참석한 내빈들을 소개했다. 보령시장이 왔고 국회의원, 시의원, 무슨 무슨 협회 회장들이 나와 인사를 했지만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우리는 눈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며 "와, 대천해수욕장이 이렇게 넓었구나."하고 감탄했다. 다만 이런 행사를 기획한 보령시의 아이디어는 칭찬할 만하다 생각했다. 모래사장은 깨끗해서 맨발로 걸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보령시에서 미리 나와 위험한 것들을 미리 다 치웠다는 아나운서의 안내 멘트가 있었다.


드디어 걷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로 "만세보령!"이라는 싱거운 구호를 외치고 다들 걷기 시작했다. 해변을 따라 고작 1.5Km의 거리를 왕복하는 단순한 행사였지만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닐 사이먼의 연극 중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이나 '맨발로 공원을' 같은 작품을 보던 20대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맨발로 공원을'에서 당시 남자 배우가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여배우가 "손은 왜 그래요?"라고 묻자 "개한테 물렸어요."라고 대답해 다들 크게 웃었던 기억도 났다. 애드립이었겠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대사라 웃음 포인트가 되었다. 아내는 대학 1학년 때 워크숍으로 한 번 대천해수욕장에 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해변이 이렇게 예쁘고 넓은지 몰랐다고 했다.  


사람들은 맨발로 파도가 찰랑거리는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크게 웃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맨발로 걷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문득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 유독 인간만 무좀에 걸린다'라는 명제가 생각났다. 신발을 신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맨발로 걷는다는 컨셉이라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도 않을 것 같으니 이런 행사는 해마다 계속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대회장을 나와 발을 씻고 신발을 신었다. 원시의 시대에서 문명의 세상으로 금방 돌아온 것 같아서 약간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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