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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25. 2019

모든 사람에겐 단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있어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

[연애의 기억]은 줄리언 반즈가 쓴 연애 소설이다. 아직 세상이 조용하던 1960년대 런던 교외의 한 테니스클럽에서 만난 열아홉 살짜리 청년 폴과 마흔여덟 살 여성 수전의 파격적이 연애담. 소설 앞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흑백영화 [맨해튼]에서 고등학생 마리엘 헤밍웨이와 사귀던 중년의 우디 앨런이 생각났다. 친구들에게 투덜대는 우디. 보라구, 내 여자 친구는 집에 가서 숙제를 해야 한다구. 나는 집에 가서 숙제를 해야 하는 여친과 사귀고 있어. 그러나 줄리언 반스의 소설 속 주인공 수전은 폴을 아이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도 폴도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겼기에 커플은 탄생할 수 있었다. 사귀기 직전 그녀는 애인이 될 남자에게 애칭을 붙여줬다.

"그쪽은 연구할 만한 사례(case)군요. 앞으로는 케이시라 불러야겠어요."

그래서 그는 단 한 사람에게만 케이시 풀이라 불렸다. 폴 또한 수전과의 사랑을 한때의 불장난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 차이도 많고 수전에게는 엄연히 가정도 아이도 남편도 있었지만 욕정에 의한 사랑이 아니었기에 떳떳하다 생각하고 심지어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모든 사랑엔 장애물이 존재하듯이 이 사랑에도 생각지 못했던 난관이 존재했다. 수전이 알코올 중독이었던 것이었다. 알코올 중독은 나름 비장했던 두 사람의 사랑도 허물어 버린다. 70세가 넘은 독신 남자가 회고하는 친구 엄마뻘 여성과의 연애담은 어떤 의미일까. 지극히 회고적이거나 통속적일 수도 있지만 그게 다름 아닌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기에 우리는 그가 그저 주인공의 추억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라면 대부분 겪는다는 '연애'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통해 삶에 대한 다채로운 분석과 관념적인 사유들을 마음껏 펼쳐놓을 것을 안다.

이 소설의 원제는 'The only story', 즉 단 하나의 이야기다. 줄리언 반스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은 두 사람의 연애담을 묘사하면서 곁들여지는 수많은 통찰들을 통해 읽은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를 반추하게 하고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단 하나의 이야기'라는 자산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나는 폴과 수전 말고도 조운이라는 수전의 친구 캐릭터가 참 좋았다. 유일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면서 폴이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 십자낱말풀이를 속이곤 하면서 틀린 답을 채워 넣는다고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자신은 이미 지옥에 갔다 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던 특이한 유머감각의 소유자. 개를 키우기 전에 그 개가 네 눈앞에서 죽을 것까지 생각한 뒤 키우라고 충고했던 리얼리스트.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각자 하나씩 이야기를 가지게 된다. 비록 그 이야기가 영화처럼 화려하진 않더라도. 세월의 흐름에 사랑의 단물 쓴 물이 모두 빠지고 한 사람은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연애의 기억] 마지막 장면도 영화 차럼 끝나진 않는다. 줄이언 반스는 자신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수전과 담담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온 폴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며 소설을 마감한다.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접수대에서 가까운 주유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접수대 남자는 매우 친절했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무지근하게 가슴을 치는 슬픈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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