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삶의 발명』
많은 사람들이 정혜윤의 글과 책에 대한 애정을 고백해 왔다. 나는 『침대와 책』 이후로는 그의 책을 띄엄띄엄 읽었는데 『삶의 발명』은 정말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서 슬쩍 '독하나 토요일'의 책으로 끼워 넣었다. 한국소설을 주로 읽던 ‘독토’가 영역을 에세이로 넓혀 백수린 소설가의 에세이 다음으로 선택한 책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혼자 세수도 할 수 없었던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총상을 당한 뒤 조지 오웰이 했던 말("따지고 보면 마음에 드는 것이 많았던 세상이었다")을 떠올리며 자신에게는,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창조의 에너지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창조성은 '뭔가에 의미를 둔다는 뜻'이라 결론을 낸다.
정혜윤은 PD로 일하면서 알게 된 일제강점기 강제 징집된 포로감시병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흑두루미와 돌고래에서 촉발된 호기심으로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그 다큐는 정혜윤으로 하여금 '문어 한 마리를 보며 더 이상 문어숙회나 문어포무침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심장하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다큐멘터를 만든 PD가 쓴 책 『바다의 숲』의 내용을 소개하는 긴 글이 이어진다. 정혜윤은 과거뿐 아니라 지금 현재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대구 지하철 화재와 씨랜드 사태를 얘기하고 세월호를 비껴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이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삶이 사라지는 것을, 삶을 잃어버리는 것을, 우리의 인간적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게 되었다'는 시대정신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평생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그는 '모든 것은 연결을 위한 것이다' 라는 명제 하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그걸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연결되는 것이 인생의 발명 또는 삶의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하다 토요일에 모인 멤버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조금 다른 견해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PD라는 직업 특성상 다른 사람들보다 접근이 쉬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힘들었다고 말한 모 회원은 '글이 너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속해 있는 글쓰기 모임에 PD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도 글이 장황하고 왔다 갔다 스타일인 게 똑같았다고 해서 모두를 웃겼다. 어떤 회원은 '최소한 구슬들을 꿰어서 마무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일단 던져 놓기 바쁜 정혜윤의 스타일을 의심했다. 목차에 있는 앎의 발명, 사랑의 발명, 관계의 발명 들은 너무 '발명'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하기 위해 끼워 맞춘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었다. 특히 '목소리의 발명'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이야기 등등...... 물론 부러워서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일반인은 천연기념물인 검은머리물떼새를 보러 가서 게리 퍼거슨의 늑대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쉽지 않고, 흑두루미나 돌고래가 보고 싶다고 당장 한이나 바다로 뛰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글을 읽고 나면 조금 교조적으로 느껴진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유머 감각이 너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많은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에세이보다 인문서로 방향을 돌리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는 분도 있었고 어떤 회원은 이 책을 읽고 '정혜윤은 곧 소설을 쓸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자기 안에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결국 픽션을 쓰고 싶어지는 법인데 저자가 중간에 동물들의 대화를 상상으로 쓴 걸 읽어보면 조금 걱정이 된다는 얘기를 하며 웃었다.
부러움 섞인 질책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독자에게 많은 통찰과 정보를 주는 좋은 작가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모임을 마치고 남산길을 산책한 뒤 해방촌의 중국집에서 술과 요리를 배부르게 먹고 이차로 지금은 불이 꺼진 힐튼호텔 앞에 있는 소시지와 맥주를 파는 집에 가서 마음껏 먹고 마시다가 헤어졌다. 나의 새 책 <읽는 기쁨>을 가져온 분들이 많아서 일일이 사인을 해드리며 고마워했다. 다음 달엔 천선란의 소설을 읽고 두세 달 쉬다가 새로운 시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독토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