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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27. 2019

반말의 어려움

말을 잘 놓지 못하는 편입니다


말을 잘 놓지 못하는 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물론 같이 일을 하게 된 어린 후배들에게도 웬만하면 말을 놓지 못한다. 처음엔 존대를 하다가도 나중엔 말을 놓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흐름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전에 일하던 어떤 남자 카피라이터 하나는 까마득한 회사 후배였는데도 내가 말을 놓을 시기를 놓쳐버려서 그랬는지 헤어질 때까지 서로 존댓말을 주고받았다. 친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늘 주어진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누었고 한때 내가 매일 싸가던 도시락을 같이 나누어 먹던(나 혼자 회사에서 도시락을 먹기 무안할 거라며 아내가 이십 대 독신인 그 친구 것까지 두 개를 싸줬다) 사이였는데도 그랬다. 따져보면 동갑내기 친구들을 빼면 지금까지 내가 말을 놓고 지내는 사람들 대부분은 오랜 망설임 끝에 결심한 경우다.

친하다고 꼭 반말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난 이게 자연스러운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서 이따금 오해를 받는다. 알고 지낸 시간이 꽤 되었는데도 내가 말을 놓지 않고 버터면 '아, 저놈은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어나 다른 언어들에 비해 우리말이 반말 존댓말 구분을 엄격하게 해서 그런지, 아니면 종적인 인간관계가 제대로 확립되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내와 함께 아는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면 "내가 그 친구에게 말을 놓았던가, 아니면 존대를 했던가?"라고 미리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아내는 "당신 지지난 번에 술 마실 때 걔한테 말 놓겠다고 하더니 지난번에 만나 또 존대하더라"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같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도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을 놓는 건 특히 불편하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학교를 다니며 스킨십을 쌓았다면 모를까 그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무슨 정이 그리 솟아올라서 서로 끌어주고 따르고 하는 것일까. 예전에 같이 아파트 광고를 진행하던 광고대행사 국장님이 어느 날 고등학교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무심코 나도 그 학교 나왔는데요,라고 했더니 졸업 연도를 묻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어려 보여서 마음을 놓았던 모양인데 밝혀보니 내가 선배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국장님은 갑자기 말수가 적어졌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얼굴을 본 적도 없다. 고등학교 후배인 걸 알면서도 내가 계속 존댓말을 하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때 그냥 껄껄껄 웃고 어깨를 치며 말을 놓을 걸 그랬나 약간 후회도 된다. 그러나 다시 만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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