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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08. 2024

연극을 보지 않고 쓰는 연극 추천 리뷰

안소영 작·연출 《쉘터(Shelter)》


연극을 보면 꼭 리뷰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연극을 보지 않을 상태라도 일단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 연극을 보긴 했는데 내가 본 건 초연이었고 지금은 한창 재공연 중인 작품이다. 


나는 지난 3월에 '안소영이라는 새로운 크리에이터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연극 《쉘터(Shelter)》의 리뷰를 쓴 일이 있다. 그때는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봤는데 연극을 보고 나오는 순간부터 '어서 가서 빨리 집에 가서 리뷰를 써야지'라는 마음이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이 연극의 작·연출을 맡은 안소영은 골목길의 소속 배우다. 이전 작품에서도 보았지만 배우 안소영을 처음 제대로 인식한 것은 《경숙이, 경숙 아버지》의 경숙이 역이다. 참 예쁘고 연기도 잘한다 싶었는데 이렇게 거친 내용의 극본을 쓰고 연출할 줄은 정말 몰랐다. 기대 없이 갔다가 막상 보고 나서 너무 뛰어난 극본과 연출력, 그리고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에 놀란 것이다. 가히 '새로운 크리에이터의 발견'이라 할 만했다. 


《쉘터》는 당근을 통해 동반 자살을 하고자 모인 네 명의 청소년 이야기다. 십 대 연령이다 보니 말끝마다 존나, 씨X 등의 욕설이 난무하지만 그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극의 흐름을 잡아주는 느낌이었다(서로 나이 물어볼 때 윤 나이'라고 부연 설명 하는 것도 재밌다). 배달 아르바이트, 조건 만남, 또래 포주 등으로 어렵게 살아가던 최하층 청소년들은 저마다 자살할 이유가 충분하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살 방법 등을 논의한다. 심각하고 비참한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머까지 섞어 형상화하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박근형 작가가 쓰고 연출한 《너무 놀라지 마라》도 떠올랐다. 주연을 맡은 김재민, 홍명환 콤비의 연기가 좋았고 은별 역의 김지우, 가희 역의 정단비도 각자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 극단 동료인 안소영의 이 작품에 기꺼이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준 김혁민, 이현직, 최유리 배우들도 멋지긴 마찬가지다. 


연극은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적, 경제적 압박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특히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자살 모임의 회비를 사용하는 장면은 현실의 아이러니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안소영 작가는 이 공연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동시에,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연대감과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급한 해답을 내리지 않는 점도 믿음직스럽다. 좋은 연극이나 영화, 책일수록 빠른 해답 대신 좋은 질문을 던지는데 이 작품 역시 그렇다.   

   

개인 사정으로 재공연을 볼 순 없지만 그래도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내고 싶다고 하며 안소영 작가에게 물어보니 ‘더블캐스트로 바뀌면서 캐릭터가 좀 더 다양해졌고 첫 공연이나 지금이나 연극을 보고 나면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관객들이 생겨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일개 연극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누군가를 돕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게 ‘예술의 쓸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커피나 향신료가 먹고사는 데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현대인에겐 필수품이 되었듯이 연극이나 영화도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산소 같은 역할을 한다. 2024년 7월 4일부터 28일까지 상명아트홀 2관에서 상연한다. ‘강추’다. 극본, 연출, 연기 모두 좋은 데다가 짜임새도 초연 때보다 더 좋아졌다고 하니 어서 가서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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