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의 한옥 골목길을 떠나며
한 달 전쯤인가. 아내와 성북동 큰길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중년 남녀 두 사람이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삼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남자가 아주 순간적으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우리 집 골목 쪽으로 던졌다. 나는 그게 빈 담뱃갑임을 직감했다.
"선생님, 뭐 떨어트리셨는데요."
"아 예."
당황한 그가 허리를 굽혀 담뱃갑을 집었다. 2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기도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단독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옆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그가 올림픽 체조선수만큼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바지 주머니에 있던 빈 담뱃갑을 흘리는 척 버릴 수 있었던 건 전에도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골목길에 빈 담뱃갑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무신경도 싫지만 남편이 그렇게 하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동조한 여성은 더 한심했다.
가끔 아주 성격이 이상하거나 못된 인사를 만나면 나는 아내에게 "저 인간은 어떻게 결혼을 했지?"라고 혼잣말처럼 묻는다. 그러면 아내도 혼잣말처럼 대답한다. "똑같으니까 사는 거야." 맞는 말이다. 가끔 배우자 욕을 하거나 흉보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서로를 욕하거나 흉을 보면서도 계속 붙어서 잘 산다는 것이다. 반면교사다. 내가 뭔가 한심하거나 재수 없는 짓을 하면 누군가는 "아니, 저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결혼을 했지?"라고 화를 낼 테고 그러면 옆에 있는 누군가는 또 "똑같으니까 사는 거야."라고 대답을 하겠지. 아내를 도매금으로 후진 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중도덕을 잘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하는 아침이다. 불끈. 음, 이거 아침부터 너무 심각한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은 작은 우범지역이다. 강도나 폭력배 같은 심각한 범법자는 하나도 못 봤지만 담배와 생활쓰레기 범법자들은 제법 된다. 큰길 쪽 고깃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단골 담배꽁초 투척자이고(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를 버린다)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도 가끔 와서 담배를 피우다가 우리를 만난다. 이놈들은 골목에 놓인 남의 에어컨 실외기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담배를 피우려다가 우리에게 들키자 일회용 라이터를 들어 보이며 "방금 라이터를 주워서요."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 정도 억지를 쓰며 살려면 나중에 건물주가 되어야 할 텐데, 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게 만드는 놈들이다. 아내가 CCTV로 찍은 사진을 프린트해 줘서 '골목길에서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분들께'라는 긴 경고문을 붙인 적도 있다. 한번 더 오면 사진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발길을 끊었는데 이놈들이 다시 생각해 낸 꾀라는 게 겨우 CCTV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골목 초입에 서서 흡연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하도 골목 삼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많아서 경고문을 써붙이기를 몇 번 하다가 얼마 전엔 A4지 꽂는 클리어 파일 안에 경고문을 넣어 스카치테이프로 단단히 붙였더니 비가 와도 걱정이 없다. 다만 경고문을 무시하고 호시탐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이다.
내일 이사다.
당분간은 이 골목에 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범골목이여, 안녕. 경고문이여, 잘 있어라. 네가 떨어지는 날 공중도덕과 양심도 같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한옥에서 4년을 살았고 이제는 서울 성북동과 보령을 오가며 '이상한 두 집 살림'을 하는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구체적이 계획이 뭐냐고 물으면 "글쎄요. 글 쓰고 강연하고 기획하고, 책 쓰기 워크숍도 계속하고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라고 일단 대답을 할 생각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나와 아내는 앞으로 잘 살아갈 테니 골목을 오가시는 범법자들이여, 제발 담배꽁초 버리지 말고 들고 가시라. 담배를 끊으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흡연은 당신이 선택한 불행이고, 금연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참고로 나도 25년을 줄기차게 피우다가 끊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 해에 끊었으니까 12년 되었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 너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