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인의 『 읽을, 거리』북토크 가기 전의 호들갑
재섭아, 오늘은 별로 친하지 않은 너에게 편지를 써볼까 해. 왜냐하면 내가 지금 김민정 시인의 책 <읽을, 거리>를 읽는데 이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시인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매일 듣는 기분인 거라. 김민정 시인은 이렇게 얘기하지. 야,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게. 희극인 박지선은 박준 시인을 무슨 아이돌 좋아하듯 좋아하더라니까. 걔는 “지선아, 너 방송 오래 하려면 책 많이 읽어야 해.”라는 개콘 PD의 말에 책을 더 열심히 읽게 되었대. 최승자 시인은 ‘시인의 말’을 전화기에 대고 또박또박 불러 주신 분이야. 김화영 선생은 고대 가고 싶었는데 고대에 불문과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서울대를 갔다고 하셔. 할 수 없이, 나 참 할 수 없이 서울대를 가는 사람도 있구나 했지.
선생이 민음사 박맹호 사장이란 앉아 있는데 어떤 시인이 한 명 오더래. 시집을 엮는데 시가 좀 모지라니 다른 시들을 추려서 보태면 어떨까요 했더니 곤란하다는 거야. 그럼 해설을 길게 붙일까요? 했더니 그것도 안 되다는 거야. 그럼 시를 새로 써서 달라고 했더니 “금년 가을이나 연말까지 딱 한 편 더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는 쫑이예요.”라고 하더래. 그 기개가 놀라웠지. 그러면서 박 사장에게 우물쭈물하면서 5천 원만 있으면 달라고 하더래. 박 사장이 미리 준비했던 봉투를 내미니까 흥분을 감추며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듯 사무실을 나가더래. 그 시인이 누구나 하면 김종삼 시인이야. 돈이 급하면서도 시에 대한 자존심은 꼬장꼬장했던 분이지. 우리 집에 <김종삼 정집>이 있는 게 나는 자랑스러워. 배우 고아성은 유머러스한 사람이 이상형이라는군. 그래서 나도 좀 웃기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 중이야. 그나저나 황병기 선생은 지금도 하루도 안 쉬고 가야금을 연습하신다네. 하루도 안 쉰대. 나도 그렇게 글을 써야 할 텐데. 술이나 마시고, 큰일이야.
오늘 아침부터 왜 이 책을 또 읽냐 하면 저녁에 일산 풍산역에 있는 서점 ‘너의 작업실’에서 열리는 북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서지. 어제 낮에 신청서 쓰고 삼만 원 입금했는데(일 인 당 15,000원이야) 연락이 안 와서 조금 불안한 마음이야. 마감되었으면 어쩌나 하고. 오늘 저녁에 거기 가서 “안 됩니다. 마감되었습니다. 확인을 하고 오셨어야죠.”라는 소리를 들으면 하하하, 멋쩍게 웃고 근처에서 그냥 놀다 오려고. 재섭아, 앞에 친하지 않다고 써서 미안하다. 사실은 나 너 많이 생각한다. 어, 이거 저번에 홍민이 형한테 써먹었는데. 아무튼 진희 누나, 보고 싶어요.
앗, 그런데 재섭아. 방금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내가 앤드루 포터의 책을 읽다가 쓴 '독중감'이라는 글에 앤드루 포터가 와서 고맙다고 댓글을 달았어. 진짜 그 소설가 앤드루 포터가! 나는 가문의 영광이라는 댓글을 달아 기쁨을 표현했다. Oh, the glory of the family! 이렇게 썼는데 앤드루가 이 뜻을 알아야 할 텐데.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