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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

대전백북스에서 『읽는 기쁨』북토크 한 이야기

by 편성준

한국 최고의 북클럽 중 하나인 대전백북스(100 Books)에서 강연을 하며 제가 제일 먼저 PPT 장표에 올린 글은 '우리는 바쁘다'였습니다. 책을 읽으면 좋은 건 다 아는데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게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변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보다 책을 안 읽는다고는 하지만 글은 엄청나게 많이 읽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뉴스도 읽고 이메일도 읽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뜬 글을 읽고 사진과 영상을 봅니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동영상마다 거의 자막이 들어 있습니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가면 볼륨을 줄여 놓은 공중파나 케이블 TV에서도 끊임없이 자막이 흐르고 있죠.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글자에 시달리느라 정작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읽는 기쁨』은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천천히 읽는 시간에 주목하는 책입니다. 즉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큐레이션을 주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책을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었어'라는 자랑질에 가깝죠. 그래서 책의 부제도 '내 책꽂이에서 당신 책꽂이로 보내고 싶은 책'으로 정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알아준 분이 대전백북스의 이정원 박사님입니다. 그제 저녁 대전백북스에 가서 북토크를 했습니다. 대전백북스는 박성일한의원 6층에 있었습니다. 그게 궁금했던 제가 "도대체 한의사께서 왜 이런 일을 하는 겁니끼?"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더니 박성일 원장님은 예전에 백북스 대표로 활동했고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책까지 쓰신 대단한 분이라는 설명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니까 선뜻 이렇게 자신의 건물 한 층을 '백북스홀'로 내놓을 수 있는 거겠죠.


김탁환 선생과 제주도에서 만났던 고원영 박사님을 여기서 다시 만난 건 너무나 뜻밖이라 저는 반가워서 펄펄 뛰었습니다. 대전대 류호룡 교수님, 전진옥 선생, 페친 서근명 선생 등 백북스 멤버들이 눈을 반짝이며 제 얘기를 들어주고 질문도 많이 해주셔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강연 끝날 때쯤 제가 가져간 리뷰 노트 몇 권을 보여드렸더니 다들 즐거워하셨는데 어떤 분은 제가 노트에 빼곡하게 쓴 볼펜 글씨들을 보고 새로운 의욕이 솟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황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성심당에서 일하시는 이주영 선생은 예전에 제가 백북스 '책밤' 코너에 네 권만 추천하기로 해 놓고 여섯 권이나 추천하는 바람에 그걸 다 읽느라 힘들었다는 푸념을 해서 같이 웃었습니다. 이주영 선생은 제게 마쓰이에 마시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추천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내 윤혜자와 그의 대전 중학교 친구이자 대전 KOBACO 지사장인 김윤주 씨가 왔고 『미오기전』을 낸 이유출판 유정미 대표도 왔습니다. 다음 달 백북스 강연자가 김미옥 선생이라 사전 조사차 왔다며 웃었습니다.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신 뒤풀이 자리로 방송작가이자 '대덕밸리라디오'의 대표인 방성예 선생도 왔습니다. 방 선생은 저희 부부가 운영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 참가자이기도 했으므로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저는 워크숍 기간 중 방성예 선생이 쓴 원고가 얼마나 재밌고 감동적이었는지 침을 튀겨가며 얘기했습니다. 바통을 이어받은 윤혜자가 얼른 원고를 마저 써서 책을 내시라고 추궁하기를 잊지 않았지만 방 선생은 "요즘 바빠서..."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아, 우리는 왜 하나같이 이렇게 바쁘게 산단 말입니까.


잠시 흥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보령에서 대전까지 차를 몰고 간 건 처음이었는데 주차할 때부터 이정원 박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도 컴컴한 국도만 골라 오느라 느리고 힘들었지만 점잖고 따뜻한 백북스 회원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니 격려를 받는 기분이 들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니 12시가 넘었더군요. 저는 씻고 잤고 아내는 지금 씻으면 잠 깨서 안 된다며 그냥 잤습니다. 꿈도 안 꾸고 푹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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