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주까지 좇아 내려가 이자람의 적벽가를 보는 이유

이자람의 판소리 적벽가 관람기

by 편성준

판소리를 좋아하지만 춘향가나 심청가, 흥보가 등에 비해 '적벽가'는 제대로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소리꾼 이자람이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적벽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자람의 팬인 아내가 표를 예매했다. 오픈한 지 2분 만에 매진되었다는 귀한 공연이었다.


적벽가는 다른 판소리들과 달리 중국의 고전 '삼국지'애 기초한 이야기다. 유명한 '도원결의' 장면에 이어 유비·관우·장비 세 의형제가 제갈공명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벌인 인내 게임 '삼고초려'가 등장하고 하이라이트 격인 적벽대전이 유장하게 펼쳐진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소리꾼 이자람과 고수 박근영 두 사람에 의해 100% 구현된다. 적벽가는 일단 대사가 무척 어렵다. 대부분 한자성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데 이자람은 이걸 어떻게 다 외웠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공연장이 밝아서 미리 나눠준 대본집을 보며 공연을 봤는데도 모르는 문장투성이었다. 하지만 워낙 소리가 훌륭하고 중간 설명까지 능란해서 점점 흥미가 더해졌다.


1부가 끝나고 해설을 맡은 분(성함을 들었는데 까먹었다. 급히 섭외가 되어 리플릿에도 이름이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말씀이 '적벽가는 송순섭 선생이 최고인데 그의 수제자였던 이자람이 소리는 물론 발림(몸짓·손짓으로 하는 동작)까지 스승을 놀랍도록 잘 계승한 무대라는 것이었다. 거기다 고수인 박근영 선생 역시 송순섭의 지정 고수로 불린 사람이었으니 그 무대가 어떠했겠는가.


마침 현장에서 노쇼가 난 티켓이 한 장 있다 하여 얼른 확보하고는 전주에 사는 이채선 선생을 불러 함께 보았는데 이자람이 펼친 판소리 무대가 너무 감동적이었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제의 하이라이트는 '새타령'이었다. 전쟁 중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병사들이 하는 '설움 타령'에 이어 마지막에 등장하는 새타령은 억울하게 죽은 병사들이 새의 영혼으로 변하여 조조를 원망하며 운다는 내용이다. 소리를 할 때는 유장하고 힘찬 목소리로 포효하던 이자람 명창을 중간중간 설명 시간엔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관객을 대했다.

이자람이 훌륭한 것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재현하는 걸 넘어 현시대에 왜 이런 공연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소신과 통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제도 '뛰어난 지도자의 유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좌지우지된다'라는 이야기를 슬쩍 흘림으로써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전주까지 좇아가서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을 본 이유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자람 공연을 보고 나면 '자람, 잘함!'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녀에겐 애인이 많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