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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04. 2019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본 자의 모험담

추리소설가 조영주의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인생의 미련을 얘기할 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만큼 널리 애용되는 시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 남기에 이 메타포는 시간이 흘러도 늘 공감을 얻는 것이리라. 그러나 꼭 한 우물만 팔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가끔은 있다. 추리소설을 쓰는 조영주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붉은 소파]라는 소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임과 동시에 최근까지 카페홈즈에서 바리스타로 일했으며 무엇보다 성공한 덕후, 즉 '성덕'으로 유명하다. 그가 이번에 추리소설 대신 내놓은 에세이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는 '성공한 덕후의 자족충만 생활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살면  이렇게 많은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책을 뒤져보면 먼저 대학에 입학한 직후 키에르케고르의 '인간은 죽음 앞에 선 단독자' 라는 구절에 감명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신 앞에 선 단독자'를 잘못 표기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허탈해져서 '안 그래도 재미없는 인생, 더 재미 없어지기 전에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해보자'라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 성덕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의 주관으로 제주도에서 열렸던 'SF부흥회'는 물론 얼마 전 카페홈즈에서 김탁환 작가와 함께 했던 '백탑파의 밤'에서도 만나 보았던 그는 유명세에 비해 약간 어눌하고 낯도 가리는 편이었다. 이 책에도 그런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책이나 만화 속으로 빠져들었던  얘기가 몇 번 나온다. 그런데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평소의 어눌함이나 소심함은 사라지고 세상 모든 재미있는 일에 눈을 반짝이는 능동 덕후가 된다. 작가답게 그의 덕질은 언제나 글을 읽고 쓰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는 성덕이 되는 방법은 '언제나 지금 당신이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한 번 입덕하면 여행은 물론 고양이, 해골, 만화, 소설 등 좋아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죄다 사모으는 것은 물론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지식까지 섭렵한다. 좋아하는 분야는 가리지 않는 편이어서 심지어 떡볶이에 빠진 뒤엔 떡볶이에 대한 책을 낼 생각까지 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 책에 덕후가 되는 방법이나 성덕로서의 자랑질만 쓰여 있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해서 추리소설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스티븐 킹, 무라카미 하루키 등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작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빼곡하고 홍대 앞에서 '북새통'이라는 만화방을 운영하던 친구가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는 바람에 서른아홉 살에 첫 제주 여행을 떠났던 깨알 같은 사연도 나온다. 이대 앞 '비미남경'이라는 카페에서 은사님을 만난 신기한 이야기도 신기하고 일본 오사카의 구로몬 시장이라는 수산물 전문 시장에 가서 '게버거'를 먹는 친구를 지켜보러 갔다가(자신은 게를 먹지 못하므로) '호텔 조식을 먹고 온 상태지만 아무리 봐도 이득인 것 같은 세트를 안 먹을 수 없어서' 1000엔짜리 게버거 세트를 선택한 이야기 등 재미있고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들이 그득하다.

그는 말한다. 어떤 직업이나 학력을 가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지금 얼마나 충만한가인 것 같다고. 그가 우연히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듣고 스텐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동안의 끈기와 노력의 소산일 것이다. 나도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다만 언제나 지금 나에게 재미난 책을 읽고 정말 재미나는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그가 쓴 대로 '기다린다는 것과 노력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니까.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오늘날까지 어떤 덕질을 해보았던가 잠시 반성을 해보았다. 그는 나도 좋아하는 서경식 선생의 책 <시의 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삶의 빈칸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도 얘기한다. 그러고 보니 뭔가를 이룬 사람들 대부분은 삶의 한 부분을 비울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소설가가 쓴 글이어서 그런지 몇 시간 만에 뚝딱 다 읽힌다. 어떻게 살아야 재미나게 사는 걸까 궁금한 분, 나는 왜 이렇게 쓸 데 없이 좋아하는 게 많은 걸까 걱정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시라. 이건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걱정할 것 없다고 자신 있게 외치는 성공한 덕후의 간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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