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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06. 2019

고향을 마음에 새기는 방법의 예

김민섭의 [아무튼, 망원동]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면 짧게라도 독후감이나 리뷰를 남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프랑소와 트뤼포가 얘기한 영화광의 3단계는 유명한데,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게 씨네필의 첫 번째 조건이고 평론을 쓰는 게 두 번째, 그리고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게 세 번째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이 단계를 다 거쳐 1960년대 말 누벨바그의 기수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만들지는 못해도 리뷰를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때때로 짧은 기록을 남기는데 자신이 살던 동네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짧은 책을 쓰는 사람도 있고나, 하는 생각을 김민섭의 [아무튼 망원동]을 읽고 했다.


홍대앞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프로필에는 '홍대입구'라고 쓰지만 막상 자신이 자란 곳은 망원동이라 생각한다는 작가 김민섭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등을 쓴 화제의 작가다. 그러나 최근엔 김동식이나 문화류씨 같은 작가를 발굴한 기획자로 더 유명해졌다. 나는 제주에서 열렸던 '장르문학부흥회'에서 강사로 나온 그에게서 김동식 작가를 발굴할 때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어쩌면 김동식의 작품들보다 그가 작가가 된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였다.


아무튼, 김민섭의 [아무튼 망원동]이라는 책은 2017년의 망원동으로 시작해 1984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2017년으로 돌아오는 특이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오가던 길에 있는 스마트 안경점이나 홍순양빵집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게 얘기도 나오지만 '유리 가가린'이란 가게가 '유리가 가렸다'는 뜻인 줄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러시아 우주인의 이름이었다는 에피소드 등은 알고 보면 우리의 생활 속에 얼마나 엉뚱하고 신기한 일이 많이 숨어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망원동 이야기이다 보니 얼마 전 김탁환 작가와 함께 '백탑파의 밤' 행사를 했던 카페홈즈도 나온다. 나도 그 가게를 갔었고 며칠 전 읽었던 조영주 작가의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에서도 또 마주친 곳이라(조영주 작가는 심지어 여기 바리스타로 근무했었다) 친근하고 즐거웠다.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나 [대리사회]때만큼이나 울고 웃으며 이 원고를 썼다는 김민섭 작가. 나는 그의 이전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제목으로 유추해 보건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보다는 이 작품이 훨씬 더 자유롭고 조근조근한 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제 시대가 변하고 지형이 바뀌어 이태원의 어느 동네처럼 망원동이 '망리단길'로 불리는 걸 보면서 고향과 작별을 고하는 장면은 괜히 짠하기까지 하다. 책장을 덮으며(전자책이라 실제로 책장을 덮을 순 없었지만) 이 작가가  망원동에서 나고 자라는 바람에 그 동네 얘기를 쓴 것처럼 다른 작가들도 자신이 남기고 싶은 동네 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시시콜콜 써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각 동네마다 도서관에 가면 '그래도 종로', '어쨌든 성북동'이런 책들이 있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어쨌든 시리즈'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으니까 제목 앞에 그래도, 하지만, 왠지, 이런 걸 붙이고...음. 독후감이 이상한 방향으로 빠지고 있다. 그만 쓰고 부친상 당한 선배가 있는 둔촌동 장례식장에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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