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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3. 2024

난생처음 해 본 동네 북토크

소박한  『읽는 기쁨』 북토크 후기


성북동에 사는 성화숙 선생이 연락을 해오셨다. 동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내 책 『읽는 기쁨』 북토크를 기획했는데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물론이지요. 오브 코스. 장소가 성북동인 데다 성화숙 선생인데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전날 최인아책방에서 글쓰기 특강 6회의 첫 시간을 열었던 나는 좀 피곤하고 침대가 바뀌어 잠도 설치긴 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컨디션을 회복하고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 쪽에 있는 성화숙 선생 댁으로 갔다.

북토크 멤버가 일곱 명이라고 했는데 놀랍게도 내가 아는 분이 셋이나 있었다. 서촌에서 사계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장윤희 선생과 동시통역사이면서 역사 덕후이기도 한 김효정 선생이었다. 장윤희 선생은 서촌그책방을 통해 소행성 책 쓰기 워크숍 멤버로 발전함으로써 가까워졌던 분이고 김효정 선생은 인스타그램에서 매우 유명한 역사 탐방 활동가였다. 아내는 @shameless_homebody 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이 분의 역사 탐방 프로그램에 세 번 정도 참가했고 나도 한 번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내용이 너무 좋았다.


북토크는 내가 준비한 PPT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 누군가 내 책 리스트에 겹치는 게 너무 없다고 한숨을 쉬며 얼마나 책을 많이 읽으셨으면 이런 책을 썼냐고 하길래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좋아하는 책을 소개한다기보다는 그 책에 대해 글을 쓴다는 마음으로 원고를 썼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모인 분들은 엉뚱하게도 '글쓰기라는 게 배운다고 느는 것이냐'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나는 전날 최인아책방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되새기며 추사 김정희의 '수묵화는 배워도 안 배워도 어렵다'라는 화두를 꺼내 모인 사람들의 비난을 샀다. 그래도 워낙 독서량이 많고 생각이 깊은 분들이라 나의 '바담풍'을 바로 '바람풍'으로 알아듣기는 했다.

성화숙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일본 추리소설을 정말 많이 읽었다고 했고 김효정 선생은 역사, 추리, 판타지로 얼룩진 청소년 시절의 개인적 독서 경험을 털어놓았다. 선생도 아이작 아시모프의 「사기꾼 로봇」을 소년 시절 우연히 너무 재밌게 읽고 그다음부터 SF에 빠졌는데 내 책에 그 작품이 언급된 걸 보고 진짜 반가웠다고 했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역사 추리 판타지 책을 정말 많이 읽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도 『반지의 제왕』을 읽을 정도로 픽션을 좋아했으나 특이하게도 한국소설은 한사코 피하는 독자였다고 고백했다. 한국 소설이 너무 칙칙하고 사실적이어서, 였다. 현실도 이렇게 괴로운데 책까지 어두운 걸 읽기는 싫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선생은 자타가 인정하는 역사 덕후이니 얼마나 파란만장한 역사적 비극에 통달해 있겠는가.


장윤희 선생이 내 책을 읽으며 '아니 이렇게 안 읽은 책이 많을 수가'라고 반성을 했다고 하길래 전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내가 이 책을 쓸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다. 책 제목과 부제에 얽힌 에피소드도 털어놓았더니 모두들 즐거워했다. 정인숙 선생이나 김경민 선생은 전시도 많이 다니고 문화적 경험을 많이 하는 편인데 막상 그걸 글로 쓰는 건 너무 어렵다는 고백을 했다. 나는 운동이든 글쓰기든 어깨에서 힘을 빼는 게 중요한데 그게 쉽지 않은 덕목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모드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는 동네가 비슷해 얘기가 나온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에 대한 성화숙 선생의 찬사가 있었고 황정수 선생의 글에 대한 김경민 선생의 언급에 김효정 선생의  열광이 이어졌다. 김효정 선생이 어렸을 때 읽었던 『15 소년 표류기』 등 소년 소설에 대한 소회를 전방위적으로 나누다가 성화숙 선생이 문득 가져온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라는 창비의 동화책을 보고 김 선생은 반가운 나머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창비의 동화책들은 지금 읽어도 너무 훌륭하다는 것이다. 성화숙 선생은 나에게 소설을 써보라고 하면서 지금처럼 글을 쓰면 성석제 소설가만큼이나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멘트로 용기를 주셨다.


모임 멤버지만 참석을 못 하신 김원희 선생이 책 리뷰를 보내 주셨다. 독서를 게을리하고 있는 자신에게 내 책이 골목길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 같은 존재였다는 고마운 글이었다. 한 시간 반의 행사가 모두 끝나고 동네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삐에디'에 가서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었고 단골 커프숍인 '킵업커피'에 가서 커피를 산 뒤 집으로 다시 올라왔다. 나는 원고를 쓸 게 있어서 먼저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성화숙 선생이 집에 있던 시바스 리걸 12년 산 위스키와 금일봉을 챙겨 주셔서 사양하지 않고 받아 나왔다. 날씨가 너무 덥고 가방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벼운 금요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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