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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19. 2024

세미가 쏜 영화 시사회

영화 《딸에 대하여》GV 후기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이미랑 감독의 영화 《딸에 대하여》를 두 번째로 관람했다. 오늘은 상영이 끝나고 정재승 박사를 모더레이터 삼아 진행하는 GV가 있었다. 정재승 박사는 그린 역을 맡은 임세미 배우에게 대본을 읽어보고 출연을 결심하게 된 대목이 있느냐고 물었고 임세미 배우는 그린이 엄마와 욕실에서 싸우는 장면(엄마가 이렇게 가르쳐 놓고 왜 그래요?라고 하는 대사)과 엄마와 이제희 할머니가 나누는 대사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사람."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고 대답했다. 정재승 박사는 행사 패널에 자기 이름이 '제승'으로 표기된 데 대하여 수정을 요구하면서 "영화는 사실주의지만 행사는 SF적으로"라는 재치 있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미랑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주제는 '돌봄'의 문제였다고 했다.  레인의 엄마가 동성연애를 하는 딸을 말리는 것도 결국은 '혼자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정재승 박사는 '방귀박사'가 아닌 척척박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수박에 숨은 동성애적 코드를 말해주는가 하면 주인공 이름 그린과 레인의 숨은 뜻을(그린은 싹을 틔우는 의미고 레인은 그걸 북돋는 의미) 해석해 내고 영어 'Lady'가 빵을 먹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출발했음도 알려줌으로써 지식인의 면모를 과시했다.


질문하는 사람에겐 상품이 있다고 해서 손을 번쩍 들고 맨 먼저 질문과 소감을 말했다. 내가 한 질문은 이 행사의 부제가 '세미가 쏜다'인데 과연 세미 배우가 어디까지 쏘았느냐, 였고 소감은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제희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상주는 누구냐고 묻는 장면(다른 남자분은 안 계시냐고 묻는)이었다고 말하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돌봄과 동성연애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염려로 귀결된다는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임세미 배우는 웃으면서 자신이 모든 것을 쏜 것은 아니고 객석료만 냈다고 대답했다(대관료는 영화사에서 냈다). 질문자에서 주어지는 상품은 새롭게 영화에 대한 띠지가 붙은 김혜진 작가의 원작소설이었다.


좋은 질문과 대답이 많은 GV였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촬영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레인은 현실에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다'라는 말을 주고받았다는 임세미 배우의 말이었다. 그리고 레인이 언제나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까지 갖춘 것은 그동안 많이 단련된 사람이어서(이성애자가 아니라서 겪는 멸시와 고충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라는 해석을 레인 역의 하윤경 배우가 했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똑똑한 배우라 연기도 잘하는구나 생각했다. "이 모든 게 레인이 남자라면 다 해결될 일이었다"라는 이미랑 감독의 말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이미랑 감독은 요즘 많이 대두되고 있는 '대안가족의 조건'에 대한 정재승 박사의 질문에 '대안가족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가족의 대안이 필요하다'라는 어느 작가(성함을 잘 못 들었다)의 문장을 내놓았는데 너무 통찰력 있는 말이라 쉽게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좋은 영화와 GV까지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해 맥주를 한 캔 마시며 이 후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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