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Sep 20. 2024

'예술가는 고급 구라꾼'이라는 깨달음

전시회《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Spaces’》 리뷰



백남준이 '예술은 고급한 사기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말에 찬동하게 된다. 이번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 미술 기획전으로 열린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Spaces’를 보면서도 또 한 번 그런 깨달음이 왔다. 아, 정말 예술은 고급 구라의 세계로구나.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은 1995년부터 활동한 아티스트 듀오인데 그 상상력과 실천력이 호방하기 이를 데 없다. 이미 사막 한복판에 프라다 매장을 세운 영구 설치 작업 ‘프라다 마파(Prada Marfa, 2005)’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스케일은 입이 딱 벌어진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도 실제 크기와 별 차이가 없는 풀장이 들어섰고 스테인리스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주방과 실험실, 레스토랑 등을 둘러보고 있자면 이 많은 설치비와 수많은 인력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누군가 "사막에 프라다 매장을 세우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라고 하다고 당장 그러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예술적 통찰과 유머 감각, 철학으로 무장한 '강력한 구라'가 등장하면 부자들은 아낌없이 돈을 쓴다. 공공기관도 호의를 가지고 그들과의 공동 작업을 추구한다. 예술가들의 제안이 말이 될 뿐 아니라 시대적·사회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전시장 안의 기록 필름에서는 두 사람이 공원 안에 설치했던 예술작품이 퀴어를 다뤘다는 이유로 파괴된 사건도 나온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언제 어디서나 있었지만 그걸 하나하나 깨부수는 것도 예술가와 실천가들의 몫인가 보다. 이 사건에 대한 아티스트 듀오의 멘트가 가슴을 친다. "공원에서 실제 게이 커플이 매를 맞는 것보다는 저희 작품이 파괴되는 게 낫죠." 용기도 있고 의미도 있는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전시 기간이 길다. 2024년 9월 3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다.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가보시기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미가 쏜 영화 시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