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름의 《해야 할 일》
영화나 연극을 보면 바로 다음날 리뷰를 쓰는 편이다. 그러지 못하면 아예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또 시간이 지난 뒤 쓰는 리뷰는 흥이 안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9월 10일에 CGV용산에서 특별 시사회로 보았던 영화 《해야 할 일》은 지금이라도 리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좋은 점을 알려서 꼭 보라고 말하고 싶으니까.
조선소를 배경으로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를 다룬 영화라고 하면 일단 어둡고 칙칙할 것이란 선입견을 갖게 된다. 현실도 힘들고 짜증 나는데 영화까지 그런 걸 봐야겠냐는 방어논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안정적인 연출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그런 걱정을 가볍게 날려주는 고마운 영화다. 시나리오를 쓴 박홍준 감독이 한때 조선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이토록 생생한 직장인 묘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장성범, 김남희, 강주상, 서석규 등 '어디선가 한 번씩은 본 것 같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하게 해 준다.
영화는 정리해고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다각도로 비추다가 마지막에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제대로 얹는 내공을 발휘한다. 인사과로 발령이 난 강준희가 액셀을 아주 잘 다뤄서 회사 측의 일을 순식간에 해결하면서도 주말에 나와 특근을 하는 장면도 짠했고 한때 운동권이다가 이젠 '1등신문'에서 기자 아닌 회사원으로 사는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나왔던 '양심'에 대한 대사도 인상 깊었다. 나는 아침에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고 딸에게 고하고 나온 장 부장의 딸이 인사과에 전화를 해서 꽃 보낸 주소를 물어보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다른 장면들은 거의 다 웃으며 보았다.
재밌는 소재로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건 쉽지만 심각하고 재미없는 소재로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 영화는 보고 나서 관객이 죄의식을 느끼거나 찝찝하게 만들지 않는다. 명품 연기와 짜임새 있는 연출이 소재의 압박을 이기는 영화다. 시사회가 끝나고 극장에서 만난 소설가 조선희 선생과 뒤풀이 자리에 잠깐만 들렀다 가자고 했으나 술과 안주가 맛있었고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이은 감독, 정지영 감독 등과 인사를 나누고 영화에 대한 수다를 떨다가 새벽 1시 반에 귀가했다. 다음 날은 부산에서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두 시간 자고 일어나 부산 가는 KTX를 타느라 죽을 맛이었지만 그래도 영화가 좋았고 뒤풀이도 즐거웠으니 불만 없다. 어제 개봉했다.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전혀 없으셨다면 이제라도 생각을 바꿔 보시기 바란다. 자신 있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