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물가 가까이」
여자는 처음 결혼했을 때 남편에게 바다를 보여 달라고 졸랐다. 둘은 테네시 출신으로 돼지를 키우는 시골 사람들이었다. 여자는 대서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바다를 보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럼 여기 일은 누가 하고?" 이게 그의 대답이었다.
그녀가 첫 아이를 임신해 배가 남산 만해졌을 때였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갑자기 남편이 당장 가방을 싸라고 말했다. 바다로 간다는 것이었다. 둘은 새벽에 차에 몸을 싣고 테네시 구릉을 지나 해안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달린 후 여자는 처음 보는 바다에 숨이 헉 막혔다. 대서양은 초록빛이었다. 그때 남편이 회중시계를 꺼내더니 "딱 한 시간이야, 마사. 한 시간이 지나서도 이 자리에 돌아오지 않으면 나 혼자 갈 테니 당신이 알아서 집으로 찾아와."
미친 작자였다. 여자가 맨발로 바다로 달려가 30분을 걷다가 5분 늦게 도착했더니 남편이 차 문을 닫고 시동을 켜고 있었다. 그가 차를 출발시키려 할 때 여자는 도로로 뛰어들어 차를 세웠다. 여자는 차에 올랐고 자신을 버리고 떠나려던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살았다.
손자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는 자신이 인생을 다시 한번 살게 되면 절대 그 차에 오르지 않겠다고 말했다(할머니는 그 남자의 아이를 아홉 명이나 낳아주었다). 손자가 왜 그 차에 다시 탔냐고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땐 다 그랬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지."
클레어 키건의 『푸른 들판을 걷다』에 실리 단편 중 「물가 가까이」에 나오는 얘기다. 이 짧은 단편을 읽으며 미래를 걱정하느라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땐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일요일 아침에 클레어 키건의 단편을 읽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본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다(근데 클레어 키건 인간적으로 너무 잘 쓰는 거 아닌가).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일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느라 하고 싶은 걸 뒤로 미룬 일'을 꼽는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자. 좀 바보 같이 살아도 큰일 안 난다. 어차피 몇십 년 더 살면 결국 다 죽는다. 물론 그전에 죽을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