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지기들을 위한 글쓰기 강연 후기
건대입구역에 있는 '열린옷장'은 옷과 구두 등을 빌려주는 정장 공유 플랫폼입니다. 기증자들에게 받은 옷을 깨끗이 세탁하고 다려서 저렴한 가격에 대여를 해주는데 특히 면접시험을 앞둔 젊은이들에게는 무료로 옷을 빌려 주기도 합니다. 참 착한 사회적 기업이죠. 이틀 전 아침 9시에 저는 여기 가서 두 시간 동안 글쓰기 강연을 했습니다. 10여 년 전 열린옷장을 만들어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김소령 대표와는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시절에 알던 사이인데 잊지 않고 저를 불러 주셔서 강연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김소령 대표는 '옷장지기 모두 콘텐츠 에디터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홈페이지에 '오픈노트'라는 옷장지기 저널 페이지도 운영하고 있고요. 콘텐츠 에디터라면 글도 잘 써야 할 텐데, 라는 마음에 저를 부른 거죠. 기쁜 마음으로 강연을 수락하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연 나는 옷장지기들에게 어떤 글쓰기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헤아려 보았습니다.
열린옷장엔 기증자와 대여자들이 보낸 손 편지가 정말 많습니다. 모두 열린 옷장이라는 공유 플랫폼의 취지에 공감하고 고마워하는 글들이죠. 옷을 둘러싼 수많은 사연이 오가는 곳이니 만큼 솔직하고도 가슴을 울리는 소박한 글을 쓰는 법에 대해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글은 테크닉보다는 진정성이 중요하니까요.
아침 9시에 회의실에 모인 10명의 옷장지기들은 글쓰기 강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콘텐츠 에디터가 글을 잘 써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는 생각 쓰기'라는 저의 평소 신념을 얘기했고 글의 최소 단위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글 쓰는 게 막연할 때는 ‘만약에’라는 가정법을 사용하면 좀 쉬워진다는 팁도 알려 주었습니다. '10분 글쓰기' 시간엔 “세상에 정장이 필요한 이유”를 주제로 써보라고 했는데 국문과 출신이라 밝힌 김민영 사무국장님은 '우리 남편은 오늘도 나이키 셔츠를 입고 출근했다'라는 제목의 멋진 글을 써주셨습니다. 아내가 정장 공유 플랫폼에 다니는데 나이키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남편이라니, 재밌지 않습니까.
훈훈한 분위기에서 강연을 마치고 김소령 대표의 안내로 위층에 있는 사무실과 의류 보관실을 돌아보았습니다. 옷이 정말 많았고 옷을 다리고 세탁하는 방도 따로 있었습니다. 이 모든 걸 함께 하는 직원들의 얼굴엔 보람과 긍지가 넘쳐흘렀습니다. 카피라이터를 하다가 옷장지기를 하는 김 대표도 있고 카피라이터를 하다가 작가와 글쓰기 강사를 하는 저도 있습니다. 사실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니까요. 뿌듯한 마음으로 예전 동료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김소령 대표가 건네준 종이가방엔 예쁜 머그컵 두 개와 스티커, 옷장지기들이 쓰는 향수가 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글쓰기 강연을 하는 게 힘들지 않고 늘 재밌어하는 게 제 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